지난 2018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주장으로 나선 박종아. 연합뉴스
[일요신문] 남북단일팀 결성, 올림픽 출전, 세계선수권 준우승(3부리그), 최고 공격수상 수상. 지난 3~4개월간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공격수 박종아가 겪은 일들이다. 만 21세의 어린 선수가 감당해내기에는 벅찬 일인지도 모른다. 박종아의 한쪽 어깨에는 팀의 주장이라는 짐도 있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이라는 큰 산을 넘고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그와 만났다.
#아쉬운 시즌 뒤로하고 즐기는 ‘불금’
정신없이 달려온 대표팀은 지난 4월 중순 2018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그룹 B 대회를 마지막으로 2017-2018 시즌을 마무리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나섰고,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도 거뒀다.
성취감이 들법도 한데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아쉬움’이었다. 그는 “두 대회 모두 아쉬운 성적”이라며 “올림픽에서 목표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과 함께 승격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5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대회 최고 공격수로 선정됐다. 그는 “우승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준우승도 괜찮은 성적인 건 맞다. 팀과 함께 웃으며 상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이런 큰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2017-2018 시즌을 마친 박종아는 현재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시즌을 마치고선 자유를 만끽했다. 고향 강릉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중학생 시절 대표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5월에는 가족 여행도 떠날 계획이다.
운동에 집중하느라 함께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났다. 대부분 대학생인 친구들과 ‘불금’을 보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그는 “친구들은 매주 불금이지만 나는 휴식기가 아니면 불금이 없다. 지금 많이 놀아둬야 한다”며 웃었다.
#‘팀 코리아 주장’에게 남달랐던 남북정상회담
인터뷰가 진행된 4일은 4·27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의 주장을 맡았던 박종아에게 남북정상회담은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대회 이후 북한 선수들과 작별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북한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정이 들었던 것 같다”며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는데 남북 관계가 좋아지고 체육계 협력도 늘어난다면 또 그 친구들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에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해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각종 종목에서 단일팀 구성 논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박종아는 “잘 되길 바라지만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단일팀이 구성될 때 서운한 마음도 들었고 상처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첫 언급 이후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단일팀 구성 논의는 해가 넘어가며 급격히 진행됐다. 대회 개막을 약 20일 앞두고 단일팀 구성이 최종 결정됐다. 1월 25일 남북한 선수들이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다. 대회 개막일은 2월 9일이었다. 박종아도 짧았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아이스하키는 팀워크가 중요한 종목인데 호흡을 맞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단일팀 구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준비시간이 짧아 성적이 더 안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일팀 구성 과정의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높은 분들이 뉴스에서 말씀을 하시니까 우리는 어떤 의견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단일팀과 관련된 논의 중 한 정부 관계자는 ‘여자 아이스하키는 메달권 밖’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박종아는 “그땐 정말 선수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일팀 구성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준비시간을 넉넉히 가진다면 앞으로 더 많은 종목에서 단일팀을 보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박종아. 사진=박종아 제공
그에게도 단일팀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북한 선수들과 첫만남에서는 어색했지만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또래였기에 친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하기도 했고, 연애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북한 선수들의 열정에 놀라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외래어를 안쓰다보니 아이스하키 용어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말하더라”라며 “우리 감독님(세라 머리)이 외국인이고 하니까 북한 선수들이 우리에게 맞췄다. 용어를 종이에 적어서 가지고 다니며 달달 외우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짧았기에 경기 준비에 총력을 다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정해진 훈련시간 이외에도 수시로 이야기하고 비디오 미팅도 해야 했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매번 관계자 허락이 있어야 북한 선수들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면 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캡틴 박종아의 향후 계획
박종아는 중학생 시절부터 대표팀에 소집돼 올림픽에서 주장을 맡기까지 남부럽지 않은 경험을 쌓았지만 여전히 만 21세 젊은 선수다.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오는 8월 대표팀 소집과 2018-2019 시즌을 앞두고 중대 기로에 서있다.
국내에서 가장 여건이 열악한 종목 중 하나인 여자 아이스하키는 사상 최초 실업팀 창단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박종아는 실업팀 입단과 대학 복학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고교 시절 캐나다로 ‘하키 유학’을 떠난 그는 서스캐처원대학에 스카우트됐다. 학교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올림픽 준비에 ‘올인’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선수 생활은 지속할 계획이다. 대표팀 선수로 꾸준히 활약해 팀을 세계선수권 1부리그로 이끌고 오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나서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는 “이제 실업팀이 하나 만들어지는 단계다. 어릴 때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열악한 환경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좋은 성적을 내서 아이스하키 저변을 넓히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