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과거 한국당 지방선거 공천심사위원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는 전직 의원은 “역대 지방선거에서도 당 대표의 자기 사람 심기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번 선거처럼 심한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각 시도당 공천심사위가 뭐 하러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장 후보로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단수추천된 것과 부산 해운대을에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이 전략 공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사람 모두 홍 대표의 최측근이다.
홍 대표는 이미 지난해 당무감사를 통해 대대적인 당협위원장 물갈이를 했고, 주요 당직에도 측근들의 배치를 마쳤다. 이후에는 김대식 원장을 통해 홍준표 계파 심기에 주력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역 정치인들에게 각종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하며 친홍(친홍준표)계로 포섭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김대식 연구원장 취임 이후 여의도연구원 여성정책위원장과 지역발전위원장으로 임명됐던 박에스더 행복파트너스 대표와 이주환 전 부산시의원은 최근 전직 국회의원들을 제치고 부산 북강서갑과 연제구 당협위원장으로 각각 임명됐다.
홍 대표는 이미 지방선거 이후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사실상 대표의 임기를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내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보다 차기 당권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당이 지방선거 인재영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진짜 이유는 낮은 당 지지율이 아니라 차기 당권을 의식한 홍 대표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 대표가 당권 경쟁자가 될 만한 인물이 영입되는 것에 대해 기피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한국당 복수 인사들의 말을 빌려 ‘홍 대표가 중량급 인사 추천이 들어오면 뜸을 들이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심부름꾼을 보내 영입 시늉만 냈다’고 보도했다.
천안갑 재보궐 선거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한국당 지도부로부터 출마 제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역시 홍 대표가 당권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이 전 총리의 영입을 기피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의 전직 의원은 “홍 대표가 최근 하는 일을 보면 우리 당이나 보수 진영을 위한 일은 없고 본인을 위한 일만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홍 대표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상황이 비정상적인 것은 맞다. 당을 조직적으로 장악해서 차기 대표나 대선에 또 나선다든지, 어떤 당내 선거를 대비한 움직임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홍 대표의 임기는 2019년 7월까지다. 지방선거 이후 조기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 대표로 선출되면 임기가 2020년 6월 이후까지 늘어난다. 홍 대표가 2020년 4월 치러질 다음 총선에서도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홍 대표가 총선에서도 자기 사람을 심은 후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당내에서는 홍 대표를 얼굴로 내세워서는 보수 재건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홍 대표에게 대적할 만한 인물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한국당 전직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과 전당대회에서도 홍 대표에 맞설 인물이 없지 않았나.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심지어 홍준표 사당화가 상당히 진행된 다음에 열리는 전당대회에선 더 압도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홍 대표가 종신대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하더라. 현재는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 한국당이 대권을 잡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홍 대표 쪽에서는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무제 등 과격한 노동정책의 부작용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거다.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보수진영에 기회가 온다는 판단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한국당 전직 의원은 “홍 대표에게 대항할 사람이 있든 없든 홍 대표가 또 한 번 당 대표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홍 대표로는 보수 재건이 어렵다는 것이 상당히 많은 당내 인사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홍 대표가 자신의 대권 플랜을 위해 지방선거 승리보다 2등 싸움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보수 진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른미래당과의 연대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은 일부 지역에서 지더라도 지방선거를 계기로 우리 당의 싹을 밟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이 손해 보면서도 가격을 낮게 책정해 중소기업을 제거하고 시장을 독점하는 그런 방식”이라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2등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의 지도자들이 야권 통합에 대한 논의를 해야지 서로 2등을 해서 ‘너를 죽여서 내가 산다’는 뺄셈 정치를 하면 지방선거 이후에도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석을 얻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지방선거 판세가 점점 더 한국당에 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 6석을 얻지 못하면 홍 대표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국당 전직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6석을 얻지 못해도 사퇴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 전에 원칙적인 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자기 사람 다 심지 않았나”라고 전망했다.
전직 한국당 당직자도 “홍 대표에게 찍히면 최고위원도 제명처분을 당할 만큼 홍준표 사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6석 얻지 못했으니 사퇴하라고 당 안팎에서 아무리 비판해도 눈 하나 깜빡 안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 대표 측 관계자는 “홍 대표가 인재영입을 위해 여러 인물들을 접촉했는데 당권을 잡으려고 일부 인사들을 배제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입 제안을 받지 못했다는 이완구 전 총리 주장에 대해서는 “향후 그 주장에 대해서도 진실을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차기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홍 대표가 직접 말한 것은 맞지만 현재는 지방선거에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차기 당권이나 대권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으셨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