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올림픽에 나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사진공동취재단
[일요신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평화정착 등의 내용이 담긴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선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이나 6·15 남북공동선언과 비교해 스포츠 협력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막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종목에서 ‘단일팀 구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를 통해 아시안게임에 나설 40개 종목 경기단체를 대상으로 단일팀 구성 의사를 물었다. 1차 조사에서 7개 종목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탁구, 농구, 유도, 체조, 정구, 카누, 조정이 그 주인공이다.
# ‘쇠뿔도 단김에’ 8강전 대신 악수 나눈 여자 탁구 대표팀
탁구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전까지 남북 단일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종목이었다. 지난 1991년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서 현정화를 필두로 홍차옥, 리분희 등이 ‘팀 코리아’를 결성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같은 스토리는 지난 2012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탁구는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9일부터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극적으로 단일팀을 이뤘다. 지난 2일 대회가 진행 중인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는 국제탁구연맹 재단이 새롭게 창립됐다. 창립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남북 여자 선수들이 복식을 이뤄 ‘깜짝 시범경기’를 펼쳤다. 선수들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하루 뒤인 3일에는 이벤트성이 아닌 실제 경기에서 단일팀이 탄생했다. 이벤트전을 논의하다 판이 커진 것이다. 양국 정부까지 보고가 오가는 긴박한 논의 끝에 경기 3시간 전 단일팀 구성이 최종 결정됐다. 이 같은 빠른 진행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유승민 IOC 위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 선수단은 이날 관중 앞에서 악수를 하며 8강전 경기를 대신했다.
지난 2003년 통일농구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 농구스타 리명훈. 사진=KBL
탁구 외에 농구도 적극적으로 남북이 만난 과거가 있다. 대한농구협회 관계자는 “농구는 2000년대 초반 ‘통일농구대회’를 열어 남북교류 경험이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통일농구대회에는 허재, 서장훈, 리명훈 등 당대의 스타 선수들이 총출동한 바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일단은 우리가 의향 정도만 비춘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선수들의 기량 검증이 우선이다. 북한 여자 농구는 최근까지도 국제무대에 나섰지만 남자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또한 북한의 의사도 중요하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남자팀보다는 여자팀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에 대해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여자 단일팀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은 없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아무래도 언론에서는 남자팀에 군복무 문제가 걸려 있어서 예민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도도 남북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종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한유도회 관계자는 “국제대회가 있으면 아무래도 말이 통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는 가깝게 지내고 있다”면서 “북한이 근육 테이프 등 용품이 부족하면 우리가 나눠줄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남녀 혼성 단체전이 신설되는 점 또한 호재다. 그는 “개인전이나 기존에 있던 남자 단체전, 여자 단체전보다는 혼성 단체전에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9일 레바논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가 있다.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애석하게도 북한이 불참한다. 유도회는 현재 아시아유도연맹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다.
# 단일팀 구성, 의지는 있지만 ’조심조심‘
남북 관계 진전에 순풍이 불면서 많은 종목들이 단일팀 구성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모두가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론은 단일팀을 구성한다고 해서 덮어놓고 지지하지는 않는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부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많은 단체들은 기존 대표 선수들의 ‘기회 박탈’을 경계하고 있다. 탁구, 유도, 카누, 조정 등 많은 종목이 엔트리 확대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 있다. 아시아연맹 등 상위 단체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앞서 여자 아이스하키팀 또한 IOC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의 협조로 엔트리를 확대시켜 대회에 참가했다.
조정의 경우 기존에 아시안게임 참가 이외의 종목에서 북한과 단일화를 구상하고 있다. 대한조정협회 관계자는 “아시안게임에서 조정은 15개 종목이 있다”면서 “10개 종목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5개 종목에서 북한과 단일화를 이루면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오는 6월 충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주니어조정대회에 북한의 참가를 희망하고 있다.
대한카누연맹은 드래곤보트 종목에서 단일팀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드래곤보트는 패들러(노 젓는 선수)와 키잡이, 고수가 한 배를 타고 경주를 펼치는 종목이다. 남북 모두 전문 팀이 없는 상황이기에 선수 선발과 구성에서 잡음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
체조도 엔트리 구성에 조심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괄적인 ‘반반 엔트리’가 아닌 남북의 우세 종목을 따져 한쪽에 가중치를 두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정구 또한 엔트리 확대가 단일팀 구성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이다. 어쨌든 남북 단일팀에 대한 기대감 속에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게임 열기는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