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안팎에선 한진이 공식적으로 14억 5000만 달러(한화 1조 5600억 원)를 쏟아 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월셔그랜드호텔 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 대한항공.
한진 안팎에선 한진이 공식적으로 14억 5000만 달러(한화 1조 5600억 원)를 쏟아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윌셔그랜드호텔 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한진이 호텔 사업을 명목으로 국내 자금을 대거 해외로 반출했고, 수년에 걸쳐 사업비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한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LA 호텔 사업 문제를 회사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당초 1조 원 규모인 사업비를 부풀려 오너 일가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수사기관이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해 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에선 최근까지 LA 호텔 사업과 관련한 정보 수집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진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1989년 미국 LA의 윌셔그랜드호텔을 인수했다. 1950년대 세워진 이 호텔은 같은 윌셔가(街) 주변 건물에 비해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미국 윌셔그랜드호텔 재건축을 숙원사업으로 삼고 1990년대부터 대한항공의 자금을 미국 법인인 Hanjin International Corp(Hanjin Int’ l Corp, 이하 HIC)에 보내기 시작했다. HIC는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며, 윌셔그랜드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IMF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 대한항공은 유상증자 방식으로 69억 원을 HIC에 보냈다. 1989~1998년까지 10년간 대한항공이 HIC 유상증자 등 자본 확충에 쓴 돈은 1077억 원으로 확인된다. 이후에도 대한항공은 유상증자 방식으로 매년 수십억~수백억 원의 자금을 HIC에 넣었다. 2003년 한 해에만 712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까지 대한항공이 HIC 유상증자 등에 쓴 돈은 2276억 원이다.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왼쪽)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2004년 HIC 지분의 장부가액은 150억 원으로 급감했다. 불과 1년 만에 장부상 2000억 원이 넘는 돈이 증발한 것이다. 주식의 취득가액과 장부가액이 일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고려해도 2003년 4월 30일과 같은 해 12월 4일 두 차례 유상증자로 712억 원이 들어간 회사가 단 1년 만에 지분 가치를 150억 원으로 기재했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또 HIC는 2004년 330만 8000달러(현재 환율 환산 시 35억 원)의 적자를, 다음해인 2005년에는 228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6년엔 한화 기준 7억 5000만 원의 당기순손실, 2007년에도 236만 5000달러의 당기순손실을 나타냈다. 대한항공이 윌셔그랜드호텔을 인수한 이래 HIC가 흑자를 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2004년 HIC 신주 99만 주를 취득하면서 104억 원, 2005년 또 다시 신주 99만 주를 취득하면서 74억 원을 지출했다. 대한항공의 자금 수혈로 HIC 주식 장부가액은 2004년 150억 원에서 2006년 초 242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유상증자가 멈추자 2006년 말 장부가치는 다시 215억 원으로 감소했고, 2007년에는 장부가치가 186억 원으로 하락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해외 법인의 자산 내역이 공개된 2009년 기준 HIC의 자산(부채 포함)은 928억 원이다. 1989년부터 20년간 2500억 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이 투입됐지만 투자금의 절반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HIC는 2009년에도 7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는데 한진은 윌셔그랜드호텔에 대한 재건축 의사를 밝혔다. 미국 현지 부동산 업체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윌셔그랜드호텔의 건물 가치와 토지 가치는 매년 감소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대한항공은 윌셔그랜드호텔 영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준비에 들어갔다. 10억 달러 안팎으로 추산된 사업비는 공사비 등을 포함해 14억 5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대한항공은 2014~2016년 유상증자로 6억 2000만 달러를 자체 조달했고, 2016년 3월에는 다시 6억 달러의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당시 한진해운 사태로 재무안정성을 위협받던 시기에도 LA 호텔 재건축엔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셈이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 일가가 재벌가치고는 국내 재산이 적다는 소문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LA 등에 부동산을 구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조 회장은 윌셔그랜드호텔 재건축을 앞두고 있던 2008년 12월 미국 LA 고급 별장을 593만 달러(한화 63억 7000만 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LA는 대한항공 미국 거점으로 현지 사옥이 있으며, 주재원 사택과 미주지역 본부장 사택도 LA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일각에선 조 회장의 LA 부동산 매입에 HIC 또는 대한항공이 도움을 준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공교롭게도 조 회장은 2013~2014년 국내 호텔 신축공사 과정에서 사업비를 빼내 자택 인테리어에 사용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범 한진 일가가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개설하고 국내 자금을 해외에 ‘파킹’(은닉)시킨 뒤 다시 국내로 들여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며 “관세청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검찰 수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진 측은 “윌셔그랜드호텔은 시설이 낡고 노후해 영업이 잘 되지 않았고, 거의 매년 영업 손실을 기록해 누적 적자 규모가 컸다”라며 “대한항공은 윌셔그랜드호텔을 살려보기 위해 손실을 보전했으나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같은 경영상 문제가 회계에 반영돼 당시 장부가치가 평가된 것이다. (오너 일가가)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