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방송 이후 2013년 불거진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빗발치자 최근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는 검찰에 해당 사건에 대한 본조사를 권고했다. 동영상이라는 비교적 확실한 증거물이 존재함에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검찰이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 수년이 흐른 뒤에야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이다.
취재결과 김 전 차관은 최근까지 서울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 전 차관이 근무해온 법률사무소는 환경부 출신 초고위직 관료가 설립했으며 환경 전문 로펌으로서는 국내에서는 손꼽히는 규모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출신의 베테랑 변호사를 포함해 여러 명의 변호사가 소속돼 근무 중이다. 2016년도 초부터 김 전 차관은 이곳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법률사무소의 공식홈페이지에 게재된 소속 변호사 명단에는 현재 김 전 차관의 이름이 포함돼 있지 않다.
성접대 의혹에 대한 김 전 차관의 생각을 듣기 위해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몇 차례 해당 법률 사무소를 방문했다. 방문 당시 정상적으로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김 전 차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의 거취에 관해 묻자 로펌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 한 달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출근했지만 최근 다시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거의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가끔 출근해 자문 정도를 하고 있다”며 “지금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는 상태”라고 근황을 전했다.
법률사무소가 입주한 빌딩의 관계자 역시 김 전 차관이 최근까지 이곳에 정상적으로 출근했다고 전했다. 빌딩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 한 달 전까지는 꾸준히 보였는데 최근 방송 이후 거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며 “차를 두 대 정도 운영하는데 원래 주로 바깥에 주차를 하다가 최근에는 주로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 전문 로펌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김 전 차관은 이곳에서 형사 사건을 맡아 온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과 법무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김 전 차관을 필두로 신임 변호사들이 별도의 형사사건 팀을 운영해 온 것. 로펌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은) 문제가 된 사건 이후 1년 정도 형사사건을 맡아 일했지만 계속해서 논란이 되다 보니 아래 있던 변호사들이 지금은 거의 다 나간 상태”라고 상황을 전했다.
최근의 ‘PD수첩’의 보도 직전까지 일반적인 퇴직 관료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해 온 김 전 차관과 달리 피해여성의 삶은 사건 이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과거 서울에서 꽤 규모가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피해여성 A 씨는 5월 1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현재 시골에 숨어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지내고 있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A 씨의 목소리는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A 씨는 “사건 이후 하던 일은 당연히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추가적인 피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혹독했고 이 나라를 완전히 떠날 생각마저 했다”며 “지금도 너무 무섭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 하지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라고 털어놨다.
A 씨는 ‘단 한 번만 법을 믿어보려고 한다’며 재수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아직까지 검찰에서 A 씨에게 재수사와 관련해 별도의 연락을 취하지는 않은 상태다. A 씨는 “모든 걸 다 묻어두고 혼자 삭히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회가 어렵게 왔으니 검찰에서 부른다면 당연히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며 “당시 사건과 관련한 나의 주장은 지금도 전혀 달라진 부분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일요신문’은 김학의 전 차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끝내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