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 홍페이지
# 연하남의 계보, 어떻게 되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많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더 찾아보기 어려웠고, 드라마 속에 간간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98년 배우 김미숙과 장동건이 호흡을 맞췄던 드라마 ‘사랑’이 연상녀-연하남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후 배우 황신혜-안재욱이 짝을 이뤘던 MBC 드라마 ‘천생연분’, ‘별을 쏘다’의 전도연-조인성 등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였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라는 대사로 유명한 김하늘-김재원 주연 ‘로망스’는 여전히 대중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연상녀-연하남 드라마다. 여교사와 남제자의 사랑 이야기였다는 측면에서 지금 봐도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충무로에서도 이영애-유지태 주연 ‘봄날은 간다’와 배종옥-박해일이 등장한 ‘질투는 나의 힘’ 등 2000년대 초반에는 연상녀-연하남을 다룬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배우 예지원과 호흡을 맞춘 지현우를 ‘국민 연하남’으로 등극시킨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빼놓을 수 없고,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여주인공인 김삼순(김선아 분) 역시 상대역 현빈보다 나이가 많았다. 지금은 한류스타로 거듭난 박해진의 경우 2006년 작인 ‘소문난 칠공주’에서 연하남 캐릭터를 연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아예 극 중 이름조차 ‘연하남’이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는 “트렌디 드라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트렌드, 즉 유행을 반영한다”며 “2000년대 초반은 연상녀와 연하남의 만남이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모으던 때였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도 이 같은 설정을 극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자주 제작됐고 인기도 높았다”고 말했다.
# 10여 년 만에 돌아온 연하남의 시대
대중은 쉽게 싫증을 느낀다. 비슷한 포맷의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자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이 빈자리는 각종 판타지 드라마가 꿰찼다. 그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은 외계인이었고, ‘도깨비’의 김신(공유 분)은 제목처럼 도깨비였다. 이 외에도 ‘밤을 걷는 선비’(뱀파이어), ‘하백의 신부’(물의 신), ‘흑기사’(불로불사) 등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좀처럼 늙지도 않는 존재들이 여심을 흔들었다.
하지만 비슷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연이어 등장하자 대중은 또 식상함을 느꼈다. 판타지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서도 브라운관에선 여성 시청자들의 헛헛함을 달래줄 새로운 연하남들이 등판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 홍페이지
지난해에는 양세종이라는 깜짝 신인이 등장했다. 드라마 ‘또 오해영’을 통해 ‘로코퀸’(로맨스코미디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배우 서현진의 컴백작으로 기대를 모은 ‘사랑의 온도’를 통해 주목받은 이는 양세종이었다. 두 사람은 7세 나이차를 잊게 만드는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바통은 현재 대세로 자리매김한 정해인이 이어 받았다. 지난해부터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으로 범상치 않은 낌새를 보이던 그는 ‘예쁜누나’를 통해 2018년 최고의 블루칩으로 등극했다. 편당 1억 원 정도였던 그의 광고 출연 개런티는 이미 편당 5억∼6억 원으로 급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 왜 연하남이 인기인가?
2000년대 이후 연하남이 끊임없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상이 바뀌어 남녀의 나이차가 의미가 없다”는 설명은 뭔가 부족하다.
이는 결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제 ‘결혼 적령기’라는 표현이 의미가 없어질 만큼 결혼 시기가 늦춰졌다. 게다가 남성보다 출중한 능력을 갖춘 커리어우먼이 늘면서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 연하남들과 주도적으로 연애를 이끌어가는 여성이 많아졌다.
또한 여성의 TV 채널 주도권이 강해진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빼어난 외모와 매너를 가진 연하남과의 사랑은 여전히 골드미스들에게 판타지다. 기존 초인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보다는 연하남과의 사랑 이야기는 보다 현실성이 있다는 것도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한 중견 외주제작사 대표는 “최근 연상녀-연하남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안이 부쩍 늘었다”며 “이는 골드미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그들이 드라마 시장의 주시청층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