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홍익대학교 남성모델의 나체사진 유출 사건 범인 색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혜리 기자
‘홍익대 누드크로키 몰카 사건’은 5월 1일 진행된 홍익대 회화과 전공수업에서 누군가 쉬고 있는 모델의 나체를 촬영해 유포하며 발생했다. 5월 2일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 대나무숲’에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누드크로키 수업 도중 찍힌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올라왔다’는 글이 올라왔고 논란이 들끓었다. 더욱이 피해자의 나체사진을 두고 워마드에서 이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댓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번 사건은 워마드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아직 범행을 자백한 사람은 없다. 5월 4일 홍익대로부터 수사를 의뢰받은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 강의실, 피해 남성을 차례로 조사했다. 이어 최근에는 당시 누드크로키 수업에 참가했던 학생과 교수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한 상태다. 경찰은 복도에 설치된 CCTV 자료를 통해 수강생 이외에 강의실에 출입한 인물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범행을 자백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데다 강의실 내부에는 CCTV가 없어 결국 수강생들의 휴대전화 조사가 문제 해결의 핵심 키로 거론되고 있다. 경찰도 관련자들의 휴대전화를 임의로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디지털 포렌식은 휴대폰, 노트북 등 저장 매체에 남아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과학 수사기법으로 고의로 파기한 문자, 사진, 통화기록 등의 데이터도 복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한다면 수일 내로 핵심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존정보보호 포렌식센터 관계자는 “휴대전화 20대 정도를 대상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한다면 보통 2~3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며 “일반적인 대학생 수준에서 사진을 삭제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고 로그 기록 등을 통해 증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범인이 수강생 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나체모델 수업이 진행될 때는 강의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작은 창문도 가리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외부인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다른 가능성도 제기된다. 학교와 상관없는 외부인이 누드모델 수업에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옆 반 학생의 출입은 평소에도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누드크로키 수업이 진행되던 5월 1일 14시에서 17시에 바로 옆 실기실에서도 회화과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회화과 재학생은 “1학년만 하더라도 인원이 많으므로 실기 수업을 두 반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옆 반과 비교하면 문제가 발생한 강의실의 경우 보안이 철저한 편은 아니어서 옆 반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친구를 만나거나 준비물을 챙기러 놀러 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문제가 발생한 당일 오전에도 그 반에서 누드크로키 수업이 있었는데 옆 반에서 수업을 듣는 동기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그 반에 갔었다고 한다. 수강생은 회화과 1학년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윗 학년과 타과생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회화과가 사건 이후 마련한 누드모델수업 운영 매뉴얼. 박혜리 기자
나체모델의 사진이 유출된 이후에도 누드 드로잉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 학과 차원에서는 서둘러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5월 8일 찾아간 홍익대 회화과 실기실에는 강의실 문마다 ‘모델수업 중. 수업 중 출입 절대 불가. 수강생 외 외부인(타반 포함) 절대 실기실 출입금지’라는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홍익대 회화과 실기실이 있는 복도에는 ‘회화과 누드모델수업 매뉴얼’이란 제목의 게시물도 붙어있었다. 6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매뉴얼은 △실기실 창문과 문을 모두 가리고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 부착 △지각생 및 외부인(타반 학생 포함) 출입금지 △모델이 가운을 완착한 뒤 지도교수 지도하에 문 개방 △수강생은 출석과 동시에 휴대전화 전원 끈 뒤 지도교수에 제출 △모델은 쉬는 시간과 동시에 가운 완착 및 간이휴게공간에서 휴식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회화과 재학생은 “사건 발생 이후 매뉴얼이 부착되었고 최근에는 교수님이 수업 직전에 수강생들의 휴대전화를 걷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문제가 된 사진을 여러 사람이 돌려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5월 6일 홍익대 성인권위원회는 “청와대 국민청원, 커뮤니티에는 단톡에서 공유를 했다는 등의 추측성 루머가 난무하며, 관계 없는 학생들까지 피해(모욕, 명예훼손 등)를 입고 있다”며 “성인권위원회에서는 이와 같은 루머에 학내 법무팀과 법적으로 강경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앞의 회화과 재학생은 “일단 확실한 건 64명 정도가 속한 회화과 전체 카카오톡 메신저 방에는 그런 사진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다만 2~3명 정도의 소규모 학생들이 공유했는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