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3일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대법원 사건에서 원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더 판단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이로써 2015년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에 국회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캡처.
국회 특활비는 매년 입법 및 운영 지원 명목으로 국회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에게 지급되는 돈이다. 올해에는 62억 7200만 원이 책정됐다. 지난해에는 81억 5800만 원, 2016년에는 78억 5800만 원이 특활비로 쓰였다. 하지만 ‘기밀유지가 필요한 국정수행 비용’이기 때문에 영수증과 같은 증빙 서류가 필요 없어 사용처가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사적 유용 의혹이 제기돼 왔다.
특히 홍준표 대표가 “특활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는 취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홍 대표는 지난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수사 당시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기탁금 1억 2000만 원의 출처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1억 원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홍 대표는 적극 해명했지만 특활비 사적 유용이라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을 해명하면서 “여당 원내대표 겸 운영위원장을 하면서 매달 4000만∼5000만 원씩 나오는 국회 대책비 중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했다”고 밝힌 것. 그 생활비를 아내가 모아 경선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홍 대표가 말한 국회 대책비가 특활비로 분류되는 상임위원장 직책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회 특활비를 점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에 참여연대가 특활비 사용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공개하라는 확정 판결이 3년 만에 나온 것이다.
국회 사무처는 “(특활비 내역을 공개할 경우)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이 위축된다”며 “특활비 수령인에 대한 정보는 개인정보이고 공개할 필요성도 크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국회 특활비 내역 공개가 국익을 침해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국회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공개의 필요성이 크다”는 원심판결이 옳다고 판단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홍 대표는 특활비 발언을 거듭 해명했다. 검찰의 국정원 특활비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홍 대표의 국회 특활비 유용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국회 여당 원내대표 겸 운영위원장은 특수활동비가 매달 4000만 원 정도 나온다”면서 “정책위의장에게 정책개발비로 매달 1500만 원, 원내 행정국에 매달 700만 원을 지급했고 원내 수석과 부대표들에게 격월로 각 100만 원씩, 또 야당 원내대표들에게도 국회 운영 비용으로 일정 금액을 매월 보조했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그러면서 “내가 급여로 대던 정치 비용을 원내활동비로 대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은 급여를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줬다는 것이지, 국회 특수활동비를 유용했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 세금인 공금을 유용할 정도로 부패하거나 어리석진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대표의 해명은 또 다른 논쟁을 불렀다. “당시 야당 원내대표에게도 국회 운영 비용을 지원했다”는 해명에, 지목된 당사자들이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 당시 통합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1야당 원내대표였던 저는 그 어떠한 명목으로도 홍준표 당시 국회 운영위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홍 대표는 원 의원이 반박한 다음날 곧바로 페이스북에 “당시 일부 야당 원내대표가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내 기억의 착오일 수 있다”고 밝히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단체는 지난해 11월 홍 대표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홍준표 대표의 국회 특활비 유용 의혹이 정보공개 청구소송이 제기된 발단이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홍 대표에 대한 수사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법부의 판단은 끝났지만 자료 공개 시점은 국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료 공개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국회가 끝까지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국회가 이미 한 차례 대법원 판결을 외면한 전례가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4년에도 국회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예비금 정보 등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국회는 끝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당시 의정활동 모니터링 차원에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던 참여연대 측은 “국회가 ‘자료의 양이 너무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루다 결국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자료를 공개하더라도 홍 대표의 횡령 여부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활비 특성상 구체적인 용처는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홍 대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한 구체적인 집행 내역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참여연대 측 역시 “사용 내역이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자료를 받아봐야 알 수 있다”며 “자료를 받은 후 분석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 대표를 고발한 시민단체는 이번 판결이 수사에 간접적인 영향은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산감시단체 ‘세금도둑 잡아라’의 하승수 대표는 “대법원이 국회에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은 특활비도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투명하게 사용돼야 한다는 취지”라며 “(홍 대표의) 특활비 문제를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하는 간접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효정 언론인 hyoj03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