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첫 일정인 감리위원회가 오는 17일 열린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으로부터 회계 감리 결과 등이 담긴 조치사전통지서(이하 통지서)를 받았다. 이날 금감원은 “보안에 유의하라”는 당부를 남겼고, 이틀 뒤인 3일에도 “통지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통지서는 검찰 공소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피조사대상에 송부된다. 금감원 상위기관이자 법원 격인 금융위원회에도 마찬가지로 조사 내용이 통보된다.
그러나 지난 2일 통지서에 담긴 조 단위 분식회계 의혹이 보도되면서 조사기관과 피조사대상 간 ‘신사협정’이 무너졌다. 비유하면 피의사실이 언론에 공표된 것이다. 금감원 통지서 발송 전후로 하락세로 돌아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지난 4월 30일~5월 4일 무려 20% 이상 하락했다. 지난 8일과 9일 반등하긴 했지만 4월 말 주가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통지서 발송을 언론에 사전 공개한 것부터 전례가 없는 조치”라며 “시장과 투자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는 17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감리위원회 판단과 이후 소집될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 최종 징계 수위를 보고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금감원은 지난 1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날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규정 위반에 대한 통지서를 삼성 측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이 같은 조치가 이례적이며, 나아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통지서가 공소장과 비슷한 개념이란 것을 고려하면 발송 사실만으로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위반에 대한 입증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셈이 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진웅섭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삼성 측 주장을 근거로 의혹 규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금감원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 익명의 삼성 관계자는 “금감원이 정권 코드에 맞춰 언론을 통해 ‘삼성 죽이기’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금감원은 삼성이 기업 가치를 부풀렸다고 하지만 지난해까지 금감원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결과를 뒤집은 것은 정치 논리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정치적 고려가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일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기자 브리핑에서 “시장에 가장 영향을 덜 미치면서도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핵심 관계자는 “내부 절차는 4월 중순께 모두 마무리됐고, 4월 22일부터 통지서 공개 시점을 금융위와 조율해왔다”며 “우리가 결론 내린 부분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면 그것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고, 시장에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통지 사실을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징계안’(통지서)은 4월 이전부터 작성됐고, 외부 공표에 대한 논의도 늦어도 4월 중순에는 이뤄졌다는 것이다.
서울 삼성증권 서초 사옥.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 4월 13일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별감리가 끝났고, 곧 감리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란 사실을 밝혔다. 김 전 원장은 지난 4월 2일 금감원장에 취임했지만 같은 달 17일 중도 사임했다. 2주 남짓한 재임 기간 김 전 원장이 직접 특정 기업에 대한 감리 사실을 밝히고, 퇴임 후에도 직접 자신의 SNS에 “분식회계건,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십시오”란 글을 남긴 것은 의미심장하다. 삼성 말고도 금감원에는 1년 넘게 감리위원회에 회부되지 않고 있는 주요 대기업의 회계 위반 사건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김 전 원장이 직접 이번 분식회계 사건을 우선 챙겼을 가능성과 직결된다. 김 전 원장의 ‘친정’인 참여연대는 지난해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별감리를 요구한 바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는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뿐 아니라 합병 이후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에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삼성 경영 승계의 중요 고리로 꼽혀 왔다. 만약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 가치 부양과 증권시장 상장이 경영 승계와 연관이 있다면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금감원 발표 시점이 왜 지금인지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됐을까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 건은 연구개발(R&D) 문제가 아닌 회계 시스템의 문제”라며 “국내에선 비슷한 예가 없어 회계 기준을 타이트하게 잡으면 당국이 문제를 삼을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김 전 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원 부원장은 통지서 공개 여부를 놓고 금융위와 줄다리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난 1일 금감원은 사실상 독자 판단으로 언론 공표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는 ‘반대’ 의견을 냈고, 금감원은 청와대 사정라인과 일종의 ‘직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삼성을 건드리는 대가로 차기 요직을 보장받았다는 말 따위다. 이는 금융권 안팎에서 이른바 ‘금융위 패싱’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삼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인맥으로 알려진 관료그룹은 이번 금감원 결정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모두 “시장 혼란”을 근거로 금감원 측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앞의 금감원 핵심 관계자는 “최종 징계는 금융위 증선위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면서도 “회사 내부적으로 우리는 조치를 엄격하게 하는데 금융위는 판단을 신중하게 하는 부분이 (이번 발표에) 일부 고려됐다”고 전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증선위 심사를 앞두고 삼성을 겨냥한 추가 ‘피의사실 공표’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미 몇몇 여당 의원실에서 자료를 준비 중이며, ‘스모킹 건’이 간격을 두고 공개될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은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선위 징계 수위와 관계없이 삼성의 경영 승계 플랜은 이미 주목받기 시작했다. 금감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고, 단순 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의혹…“상장 기준 바꾼 특혜“ vs “나스닥 포기한 애국상장”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특혜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인다. 2016년 상장 심사를 맡은 한국거래소가 내부 규정을 바꿔 당시 적자 기업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을 도왔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가 완화한 이 기준의 수혜를 입은 기업은 지금껏 삼성바이오로직스 단 한 곳뿐이다. 앞서 박근혜·최순실 특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 의혹을 수사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감독원 특별감리 결과가 사실로 드러나고, 증선위에서 징계 결정을 내리면 당시 상장에 관여한 한국거래소에 대한 재수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삼성 측은 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 했지만 한국거래소의 권유로 국내 증시에 상장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특혜 상장’이 아닌 ‘애국 상장’이란 논리다. 한국거래소 측은 “당시 거래소가 국내 증시 파이를 키우기 위해 삼성을 유치한 것은 맞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한국거래소 내부 관계자는 “만약 삼성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이 가능했다면 자금 조달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미국은 분식회계와 같은 경제·증권 범죄를 민·형사상 엄하게 처벌한다. 삼성이 그걸 몰랐을 리 없고, 스스로 회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처벌 기준이 약한 국내 증시 상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당시 청와대와 삼성이 관계가 좋았고, 금융권도 어찌됐든 상장 기준을 바꿔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현] |
바이오주 맥 못추는 까닭? ‘삼바’에 데이고 경협주에 밀리고 지난해 상반기부터 승승장구 해오던 바이오주가 최근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네이처셀 쇼크’와 ‘차바이오텍 쇼크’가 연달아 터지면서 바이오 거품론이 부상하던 상황에서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 발표가 직격탄이 됐다. 바이오 대장주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흔들리면서 그 여파가 바이오주 전반에 미쳤다. 지난 4월 초까지만 해도 코스피 시가총액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9일 기준 각각 6위와 7위로 밀려났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로 바이오 업종의 조정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허혜민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타업종으로의 수급 이동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논란으로 제약·바이오 지수가 하락”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논란 등의 불확실성은 단기간 해소되기 어려워 당분간 제약·바이오 업종의 약세가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이른바 ‘남북경협주’가 주식시장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것도 바이오주의 약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면서 건설·철도·철강을 비롯한 SOC 관련주들도 급등했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일 “장기 성장세를 근거로 제약·바이오에 집중되었던 시장 매기가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장착한 남북경협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