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청년주택 개발사업 신축공사 현장을 방문해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준선 기자
“단일화는 없다.”
김문수·안철수 후보와 양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양측은 마이웨이를 외치며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먼저 출마 선언을 한 안 후보는 그간 “단일화 없이 끝까지 간다”며 “마지막에 누가 이길 후보인가가 (서울시민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 후보 선거전략은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박 시장과의 일대일 구도 만들기다. 여기에는 야권의 대표 선수로 거듭나 보수와 중도층에게 ‘전략적 선택’을 받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른바 ‘밴드왜건’(편승효과)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표면적인 야권 단일화는 없지만, 김 후보와의 주도권 경쟁을 통해 단일화 효과를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등 외교 이슈가 정국을 집어삼키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면 안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커진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안 후보의 존재감은 지난해 대선보다도 낮아졌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5월 7∼8일 이틀간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박 시장(56.6%)과 안 후보(14.8%)의 지지율 격차는 41.8%에 달했다. 오히려 김 후보가 10.6%로 안 후보를 오차범위 내로 뒤쫓았다(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 응답률은 23%다.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 마지막 날 공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그러자 지난해 대선의 데자뷔가 반문진영을 휘감았다. 당시 안 후보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등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 직전까지 갔지만, 선거일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선 홍준표 대표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지지율 추세에서 밀린 안 후보는 결국 3위에 그쳤다. 최종 득표율은 홍 대표 24.0%, 안 후보 21.4%였다. 문 대통령은 41.1%로 당선됐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야권 단일화의 전제조건은 한쪽이 원사이드(일방적) 게임을 하는 것”이라며 “그래야만 지는 쪽에 중도 포기할 수 있는 출구전략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 후보는 결국 3위에 그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사라진 보수의 확장성 ▲현 정부에 대한 낮은 비토층 ▲야권의 인물 구심점 부재 등을 꼽았다. 먼저 탄핵 이후 보수층이 지지층 재건에 성공했다면, 안 후보도 9회 말 투아웃 역전을 노릴 수 있지만 지금은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표심을 드러내지 않는 보수 유권자)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철수·김문수’ 단일화는 그간의 여의도 정치문법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단일화 효과의 극대화 요건은 1위 후보에 대한 반감이다. 연대를 통해 양쪽의 지지층이 결합하려면, 비토가 강한 강력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멀게는 1987년 대선 당시 ‘양김(김영삼·김대중) 단일화’ 요구가 컸던 것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전두환의 후예’에 대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단일화나 2002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강력한 보수 후보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에 대한 반감이 한몫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 땐 10년 만에 보수로 정권교체를 꾀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적수로 있었다. 당시 여당 내에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존재했다. 반MB 연대 등이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이유다.
양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을 꾀하는 것은 인물 구심점이다. 1997년 대선 땐 김대중(DJ) 전 대통령, 2002년 대선 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역할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 치러진 2010년 6·2 지방선거 때도 ‘노무현 프레임’은 유효했다. 반면, 지난해 대선 땐 본선에 진출한 안 후보와 홍 대표는 단일화에 소극적이었고, 단일화에 적극적이었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은 인물 구심력이 약했다. 단일화 조건 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만에 하나 두 후보가 합친다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며 “안 위원장을 보수로 묶고 ‘적폐 연대’ 프레임을 덧씌우면 게임은 끝”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처음부터 2등 전략으로 나온 안철수·김문수 후보가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겠느냐”며 “아직도 선거를 잘 모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 인사는 “단일화는 없다”며 “김 후보와의 단일화 프레임은 여당 발 의도적 상처내기”라고 잘라 말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23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교통혁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한국당의 분위기도 섣불리 단일화에 나서기보다는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2∼3위 지지율이 좁혀지고 있는 데다, 사실상 1인 선거전에 나선 김 후보가 보수 밑바닥 표심을 훑으면서 당 안팎의 동정심을 얻고 있어서다. 선거 캠프도 한국당 당사에 차렸다. 한 관계자는 “제1야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규모 인원 동원 없이 배식 봉사, 새벽 청소, 1인 시위 등에 치중하고 있다”며 “이동 수단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한때 친이(친이명박)계 실세였던 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도 “김 후보는 정치를 깨끗하게 해서 돈이 없다”고 전했다.
김 후보의 선거 목표는 ‘무너진 보수의 재건’이다. 태극기 부대와 숨은 표 20%를 끌어 모으면 ‘대성공’이다. 김 후보가 야권 단일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박 시장과 안 후보가 둘이 단일화하라”고 역공을 취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보수층의 결집을 위한 반전 동력이 없다는 점이다. 되레 ‘홍준표 패싱’에 나서면서 당 지도부와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실제 김 후보는 당의 공식 선거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쓰지 않기로 했다. 인물과 자금난에 시달리는 데도 홍 대표에게 적극적인 러브콜도 하지 않는다. 이른바 ‘거리 두기’다. 야권 관계자는 “당 지도부와 후보도 엇박자를 내는데 지지층이 결집할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변수는 김 후보의 완주 여부다. 본인은 완주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당 안팎의 상황에 따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단일화’로 귀결할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은 5월 8일 경기에 김영환 전 의원, 인천에 문병호 전 의원을 각각 공천함에 따라 수도권 여야 대진표는 확정됐다. ‘다자구도=필패’인 만큼 수도권 3곳 중 1곳에서 단일화 물꼬가 터진다면,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보수 양당이 적극적으로 연대를 추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단일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만 이 시나리오도 반문 후보의 지지율 합이 박 시장을 능가했을 때나 의미가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야권연대는 적어도 둘이 합쳤을 때 당선권에 근접해야만 현실성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완패한다면, 남은 것은 ‘포스트 지방선거 발 정계개편’이다. 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모두 현 지도부의 총사퇴는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 거센 패배 책임론과 함께 다른 쪽으로 흡수되는 비운을 맞을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손학규 전 국민의당 상임고문은 공개적으로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을 거론했다. 손 전 고문은 유력한 차기 당권 도전자다. 한국당 내부의 일부 계파는 ‘포스트 홍준표 체제’에 대한 구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6·13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야권의 상황은 전쟁에서 진 패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안철수·김문수 후보의 멀어진 단일화는 역전의 싹마저 잘랐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