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인터넷 댓글 공작 등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보수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9년여 동안 보수정권은 국민들을 보수화, 우경화하려고 물밑에서 노력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국가기관의 인터넷 댓글 공작 등은 모두 이러한 시도의 일환에서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성과가 한창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최근 10여 년 사이 눈에 띄게 극우화·우경화됐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의 우경화 현상에는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뿐 아니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극우 성향 인터넷 사이트 등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 아무개 교사는 “일베를 하는 걸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많다. 생각 없이 하는 애들도 있겠지만, 그 사이트 내 주장을 진리처럼 생각하는 학생들도 꽤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이어 최 교사는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극우적인 발언을 하는 건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이 특정 아이를 가리키면서 ‘선생님 얘 일베예요’라고 희화화하며 말했다. 반 친구들이 알 정도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극우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해오지 않았겠냐”고 추측했다.
교사들이 수업이 아닌 쉬는 시간에 복도나 교실에서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일베 등에 나온 용어도 서슴없이 쓴다고 했다. ‘한남X’ ‘페미XX’ 등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말도 하면서 왜곡된 성의식도 표현한다는 것이다.
전국의 학교에서 진로교육·자살방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조 아무개 씨는 “학교들을 다니며 학생들을 만나다보면 일베 등에서 나온 ‘빨갱이들 다 때려잡아야 한다’ ‘세월호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등 극우적 주장을 말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또한 스스로 ‘일베 유저’라고 당당히 밝히며, 이에 대해 친구들이 비판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 일베 하는데 어쩌라고’하면서 그들끼리 어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전교조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조사한 수치는 없지만, 교육 현장서 학생들을 접하는 교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수업시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칭송’하고, “경쟁이나 차별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기득권의 주장을 내면화한 발언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인식과 사고방식이 학생들의 진짜 목소리는 아닐 것이라고 봤다. 학생들의 신념이라기보다는, 일베와 같은 인터넷 사이트나 댓글 등의 자극적 영향을 받으면서 보수적 사회 분위기나 어른들의 의도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학생들의 사고방식이 보수화되는 것은 사회 분위기나 부모 등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라며 ”보수정권 치하에서 우경화의 목소리가 커지다보니, 학생들도 그 영향을 받아 따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조 씨 역시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고 그냥 재미로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공격적이고 강해보이니까 마구잡이로 입에 담는 것이다”라며 “그러다보니 고등학생들은 심하지 않고, 분별력이 떨어지는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생까지가 무척 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관계자는 “판단력이 미숙한 단계의 학생일수록 그런 영향에 휩쓸리기 더 쉽다.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하니 정치적 지형에 따라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주입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회·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학생들이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교사도 있다. 안산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박 아무개 교사는 “학교 내에서 극우적인 발언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일베 등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은 몇 명 있는데 자랑스럽게 떠벌리지 않는다”며 “지역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안산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등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아무래도 예민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촛불집회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인식에도 변화의 모습이 많이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송 아무개 교사는 “교직 경험을 되짚어 보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 6·15선언 이후 학생들이 눈에 띄게 진보적으로 변했다”며 “요즘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아이들이 바뀌는 것 같다. 학생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을 처음 경험한 거니까. 한국 보수의 이념인 분단, 반공 이데올로기가 깨진 것이다. 이런 남북 평화 분위기가 이어지면 사회 흐름도 새롭게 바뀐다. 학생들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