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고성준 기자
삼성을 겨누고 있는 곳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금융당국은 삼성증권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조사 중이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5월 10일 “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세청과 경찰은 이건희 회장 일가 차명계좌를 추적했고, 검찰은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을 맡았다. 국토교통부는 삼성 에버랜드 공시지가 급등 의혹을 수사 의뢰했고, 비록 법원에 의해 일단 스톱이 되긴 했지만 고용부는 영업 기밀로 간주되던 삼성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정보를 공개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당국과 정부부처, 사정기관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삼성 옥죄기에 나선 것을 놓고 재계에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불안감이 흐른다. 그 불똥이 언제든 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특정기업을 이렇게까지 했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그 타깃이 다른 기업도 아니고 삼성이다. 이런 장면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그나마 삼성이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을 손보겠다는 게 현 정권 기조로 파악되고 있어 우리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들은 숨만 죽이고 있을 뿐”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바라보는 여권 주류 인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오히려 몇몇 정부부처와 금융당국이 삼성에 대해 봐주기식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경찰의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친문 인사들은 공공연히 “삼성은 적폐 아니냐” “이재용 재판은 문제가 많다” 며 반감을 드러냈다. 여권에 퍼져 있는 반 삼성 기류가 이른바 ‘삼성 때리기’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친문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마치 삼성을 표적으로 삼아 재벌을 길들이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재계와 야권 등에서 나오고 있더라. 지금 삼성에 대해 여러 기관이 동시에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삼성이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작 했어야 할 것을 (삼성) 눈치 보느라 못 하고 있다가 현 정권 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핵심 대선 공약이 재벌개혁인데, 문제투성이인 삼성을 그냥 두고선 절대 이룰 수 없는 공약이다. 삼성을 향한 일련의 움직임엔 이러한 정권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권 일각에선 삼성과 관련해 음모론적 얘기들도 떠돈다. 삼성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인사들을 내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비리 등을 은밀히 흘리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그 중 하나다. 여러 구설 끝에 간신히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때도 그랬고, 얼마 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 과정에서도 삼성이 배후로 거론됐다. 김상조 위원장과 김기식 전 원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삼성에 쓴소리를 냈던 인물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는 그만큼 삼성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재계, 그리고 야권에선 정권 차원의 특정 기업 죽이기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런 식으로 작정하고 탈탈 털면 걸리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의 한 임원 역시 “뭐라고 말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부분은 외면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여러 부처와 기관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결국 우리뿐 아니라 기업들 입장에선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데, 이를 노린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기존의 입장을 뒤집으면서까지 삼성에 칼을 들이대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경우 일 년 전 금융감독원이 “기준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던 건이다. 그런데 다시 제재 논의에 착수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여부 역시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 법제처 유권해석 등을 거치면서 부과 쪽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해 12월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당시 위원장은 김기식 전 원장 뒤를 이은 윤석헌 금감원장이었다. 앞서의 대기업 임원은 “정권이 바뀐다고 기준까지 달라지면 기업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잘못된 부분은 처벌을 받겠지만 기업들을 무조건 적폐로 몰아세우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 이름이 부쩍 거론된다. 참여연대가 예전부터 주장해왔던 방향대로 정부가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이건희 차명계좌, 노조탄압 논란 등은 참여연대가 수년 전부터 제기했던 문제들이다. 공교롭게도 참여연대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 그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된 것들도 있다. 참여연대 역할론은 장하성 정책실장, 조국 민정수석,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참여연대 출신들이 대거 요직에 진출한 것과 맞물리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 이를 가리켜 ‘만사참통(모든 일은 참여연대로 통한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삼성을 향한 공격의 정점은 검찰이 찍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탄압에 이어 이건희 차명계좌 의혹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5월 2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아 이를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세청도 이건희 회장의 탈세 혐의에 대해 수사 의뢰를 한 바 있다. 특수부가 아닌 조세범죄조사부가 맡은 것을 두고 ‘수사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라는 뒷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검찰과 현 정권 핵심부의 스탠스는 강경해 보인다. 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여당 의원들이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하고 나섰는데, 검찰에서 적당히 할 수 있겠느냐.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총수일가에 대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수사에서 차명계좌가 추가로 드러난 이상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자금 흐름 등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앞서의 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지금 의식불명 상태로 알려진 이 회장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지금 의식불명 상태여서 직접적인 조사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이 회장이 핵심 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회장의 차명계좌 내역을 꼼꼼히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