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감사원이 옛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을 놓고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감사원은 지난달 전기연구원에서 벤처회사인 I 사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I 사는 2015년 10월 설립 이래 아직 매출은 없지만 2016년 기준 자산 80억 원에 달하는 광학 의료기기 제조업체다. I 사 최대주주는 지분 40%를 가진 강 아무개 씨, 2대 주주는 지분 25%를 가진 서울대병원이다. 3대 주주는 지분 10%를 가진 신 아무개 씨다. 이 가운데 강 씨와 신 씨는 최근까지 전기연구원 내 같은 부서에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연구원은 2005~2015년 연구비 439억 원을 광학 의료기기 기술 연구·개발에 사용했다. 연구책임자는 I 사 최대주주 강 씨다. 2014년 4월 전기연구원은 서울대병원과 의료기기 개발 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같은 해 9월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다음해인 2015년 5월 전기연구원과 서울대병원은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같은 해 9월 임상시험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리고 2015년 10월 전기연구원 창업지원 심의를 거쳐 I 사가 설립됐다. 이 과정에서 전기연구원이 다년간 투자한 기술은 I 사와 서울대병원에 이전됐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내부 연구 직원 제보로 당시 (I 사) 창업 과정과 업무협약, 핵심기술 이전 등에 대한 문제점이 첩보 형태로 수사기관에 보고됐다”며 “수사 준비 중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해 현재는 감사 결과를 지켜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사정기관이 입수한 첩보 내용에는 I 사에 대한 특혜 지원 의혹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 검·경 등 수사기관은 피감사기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
전기연구원은 I 사 관련 자료 제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술 이전에 대한 해석상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혜 지원 의혹을 부인했다. 전기연구원 관계자는 “계약직 퇴직자가 국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 제보한 내용”이라며 “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을 (서울대병원과) 공동 연구했고, 기술에 관한 권한이 어느 쪽에 있는지 등을 (감사원이) 살피고 있다.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조심스럽지만 제보자 주장 가운데 사실이 아닌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기연구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이 2014년 4월 25일, 의료기기 개발기술과 임상 의료기술 간 상호연구협력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한국전기연구원
그러나 감사원이 비공개로 전기연구원은 물론 공동 출자자인 서울대병원을 상대로도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감사원은 매년 자체 감사계획을 발표하는데 ‘2018년 감사 대상기관’ 목록에는 전기연구원 및 상위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도 마찬가지다. 감사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감사원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지한 사안에 대해선 특정감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감사원이 밝힌 ‘2018년 전략감사’ 목록에는 ‘의료기기 품질 및 안전관리’가 포함돼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감사원 요구로 I 사 등 출자회사에 대한 자료를 제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I 사 외에도 자회사 3곳과 출자회사 1곳에 투자하고 있다.
감사원 안팎에선 ▲이번 감사가 비공개로 이뤄진 점 ▲서울대병원이 I 사에 직접 투자한 점 ▲전기연구원이 비교적 최근인 2015년 감사원 감사를 이미 받았던 점 등을 근거로 이번 감사가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대병원과 지난 정부가 가까운 관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I 사 설립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감사원은 2017년 11월 서울대병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최근 의혹이 제기된 I 사 관련 부분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반면 서울대병원이 출자한 H 사에 대해선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주의 통보를 내렸다. 즉 지난 감사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던 내용을 누락하고 수사기관이 움직이고 나서야 자체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또 전기연구원 내부 관계자는 2016년부터 I 사를 포함해 전기연구원에 대한 각종 의혹을 청와대 등에 제보했으나 사실상 묵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지난 정부 당시 최순실 등 권력 실세와 연결된 사건 처리와 관련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내부 규정 등을 고려할 때 ‘봐주기’ 또는 ‘표적 감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기연구원 역시 “(지난 정부 유착설은) 처음 듣는 얘기로 근거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우리 같은 작은 기관과 권력 실세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서울대병원은 “I 사에 확인해보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쪽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해명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중견기업 승계 실탄으로…줄줄 새는 이명박 정부 보조금 이명박 정부 당시 시행된 창업투자보조금 제도가 새삼 지탄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창업투자보조금제도를 운영, 법인 설립 시 무담보로 최대 15억 원을 지원하는 투자 촉진 정책을 펼쳤다. 2008~2011년 1000개가 넘는 기업이 이 제도의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투자 촉진’이라는 취지와 달리 엉뚱한 곳에 악용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에는 중견기업의 경영 승계에 쓰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예가 연매출 700억 원대의 타일·바닥재 전문 중견기업 D 사와 K 사의 경우다. D 사 오너의 아들은 2009년 D 사와 같은 타일·바닥재 전문기업 K 사를 설립했다. K 사는 D 사에서 일감을 받으며 폭풍성장, 2016년 기준 6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아들은 회사를 설립한 지 7년 만에 아버지에 버금가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일부에서는 K 사로 경영승계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부 보조금이 한 기업의 경영승계를 위한 ‘테이블머니’가 된 셈이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을 무담보로 직접 지급한 것은 창업투자보조금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창업투자보조금 제도를 운영한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는 현재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2000억 원이 넘는 국고가 투입됐지만 어느 회사가 보조금을 받았는지 이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은 “자료 보존 기한이 지나 관련 자료를 전량 폐기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