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포스코가 부랴부랴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돌입했지만 이번 선임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차기 회장은 남북경협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 데다 이번에야말로 정치적 외풍을 차단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일부에서 ‘외국인 회장’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2016년 11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당시 권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광고감독 차은택이 광고사 지분을 강탈하려 한 과정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준필 기자
포스코는 지난 4월 23일과 27일 두 차례 ‘CEO 승계 카운슬’ 회의를 열었다. 11일 3차 회의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으나 포스코는 부인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후보군 수나 외국인 경영인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선출작업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만큼 진행 상황이나 관련 내용을 알릴 수 없다”며 “CEO 승계 카운슬에서 후보군 선정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CEO 승계 카운슬’ 회의를 통해 CEO 후보의 요구 역량을 ‘포스코 그룹의 100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혁신적 리더십’으로 규정한 후 ▲사내 핵심 인재 육성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 내부 인재 추천 ▲국민연금 및 기관투자자 등 주주 추천 ▲노경협의회와 퇴직 임원 모임인 중우회를 통한 추천 ▲외부 서치 펌 등의 외국인 후보 추천 등을 받아 후보군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차기 회장 후보군은 이달 말 추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포스코는 이번 차기 회장 선출작업에서 외국인 후보를 포함하겠다고 밝혀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포스코가 외국인 회장을 언급한 것이 최초일 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에 외국인 CEO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정치적 외풍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부 출신 인사가 회장 자리에 올랐다. 역대 8명 회장 가운데 재무부 장관 출신인 김만제 전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 출신 인사다. 외국인이 회장으로 선출된 적은 없다. 다만 새뮤얼 슈발리에 전 뉴욕은행 부회장,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이사장, 제임스 비모스키 전 두산 부회장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실제로 외국인이 차기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는 늘 정치적 외풍에 시달려온 데다 이번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논란에 휩싸여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간 외풍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내부 구성원들을 한데 모으고, 한편으로는 외압을 막을 힘 있는 수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포스코 차기 회장 후보군은 이르면 이달 내 결정될 예정이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1차 후보만 20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 내부 출신 인사가 회장자리에 오른 ‘전통’에 비춰, 이번에도 포스코 전·현직 임원 등 내부 출신 인사가 주요 후보로 거론된다. 현직 인사에는 오인환·장인화 포스코 사장과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이, 전직 인사에는 김준식·김진일·황은연 전 포스코 사장 등이 물망에 올랐다. 박기홍 포스코에너지 사장과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도 차기 회장 후보로 꼽힌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예년처럼 ‘정치적 외풍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내비치지만 주요 후보로 언급되는 인물 중에는 과거 참여정부나 현재 문재인 정부와 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정부와 친한 인물이 차기 회장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견해도 나온다. 오인환 포스코 사장이 가장 먼저 유력 후보로 오르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오준 전 회장 체제에서 포스코의 2인자로 통한 오인환 사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권오준 전 회장 대신 해외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왔다. 오 사장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도 권 회장 대신 경제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직 인사 가운데 현 정부와 가깝다고 꼽히는 인물은 김준식 전 사장이다. 김 전 사장은 ‘장하성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제일고 출신으로 이낙연 총리와 동문이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다. 김 전 사장은 2003년 장하성 정책실장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당시 함께 포스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박기홍 포스코에너지 사장과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은 ‘이구택 전 회장 라인’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시절 포스코 회장을 역임했던 이 전 회장 라인으로 현 정권과 가깝다는 점에서 힘이 실린다. 특히 박 사장은 이 전 회장이 2004년 포스코경영연구소장으로 발탁한 인물로,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외부 인사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구자영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다. 구 전 부회장은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직접 발탁해 포스코에 몸담은 바 있는 ‘박태준 사단’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구자영 전 부회장은 포스코의 새로운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늘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