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꼼수’와 편법을 서슴지 않는 ‘마케팅 귀재’
2008년 이장석 전 대표는 야구단 창단 가입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KBO가 창단 가입금으로 요구한 120억 원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차 분납금 12억 원은 마련했지만, 2차분 24억 원이 없었다. 여러 곳에 투자를 제안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했던 이 전 대표는 당시 매일 자살을 떠올릴 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했었다. 그런 그에게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박성일 고문이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로 부를 이룬 레이니어그룹 홍성은 회장을 소개한다. 홍 회장은 금융권으로부터 모든 대출이 끊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이장석 대표에게 두 차례에 걸쳐 10억 원씩, 모두 20억 원을 보냈다. 이 전 대표가 홍 회장에게 10억 원에 20%씩, 총 40%의 지분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전 구단주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법정 구속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히어로즈의 주식이 없다고 버텼고 홍 회장은 2016년 이 전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문제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각종 횡령과 배임 혐의가 드러났다는 사실. 이 전 대표와 남궁종환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사기와 횡령, 배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각 징역 4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48억 원, 남궁 전 부사장이 32억 원 등 총 80여 억 원의 회사 돈을 가로챈 사실을 인정했다.
이 전 대표와 남궁 전 부사장은 항소를 준비하다 70억 원에 해당하는 횡령 혐의를 인정했고 70억 원을 회사에 배상했다. 직원 인센티브 명목으로 1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항소한 상태다.
# 200만 주의 유상증자를 900만 주까지 늘린 이유
히어로즈의 주식은 총 41만 주다. 이 전 대표는 67.56%에 해당하는 27만 7000주를 보유했다. 그런데 기존 정관에는 발행예정 주식총수를 ‘최대 200만 주’로 한정했지만 지난 5월 2일 주주총회에서 히어로즈 박준상 대표가 발행예정 주식총수를 최대 900만 주까지 변경하자고 주장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 찬성한 이는 이 전 대표의 권한을 위임받은 아내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난 3월 30일, 재무제표 승인을 안건으로 한 히어로즈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이 전 대표의 아내와 2대 주주인 박지환 씨(지분 10만 주, 24.39%), 조태룡 전 단장(현 강원FC 대표, 2만 주, 4.88%), 남궁종환 전 부사장(1만 3000주, 3.17%)이었다. 이 전 대표의 아내는 수년간 히어로즈 외부감사법인으로 업무를 수행하던 ‘이안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 의견 거절이 된 감사보고서를 대주주의 지위를 이용해 통과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했던 조태룡 전 단장은 “당시 나랑 박지환 씨는 극렬하게 반대했고 남궁종환 전 부사장은 기권을 했다. 결국 이 전 대표의 아내가 밀어붙이기로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
5월 2일에는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다. 기존 200만 주였던 발행예정 주식총수를 900만 주까지 늘리는 정관 개정이 안건이었다. 이번에도 이 전 대표의 아내가 앞장섰는데, 남궁종환 전 부사장까지 정관 개정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지만 이 전 대표 아내가 변경을 강행했다. 조 전 단장은 “이 전 대표가 900만 주로 발행예정 주식총수를 늘린다는 건 반성이 아니라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홍성은 회장의 분노히어로즈의 ‘주주 배정방식’으로 신주가 발행될 경우 이 전 대표가 소유할 수 있는 주식 수는 약 415만 4944주가 된다(이전 27만 7000주에다 신주 574만 주의 67.56%인 387만 7944주 추가). 그렇다면 이 전 대표가 홍 회장에게 양도해야 할 40%의 지분은 어떻게 되는 걸까. 2012년 대한상사중재원은 이 전 대표에게 그가 갖고 있는 27만 7000주에서 40%인 16만 4000주를 양도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 전 대표는 이에 불복하고 1심, 2심에다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이 전 대표가 200만 주의 유상증자를 하든, 900만 주의 유상증자를 하든 그 숫자의 40%가 홍 회장에게 넘어간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이 전 대표가 유상증자를 한 상태에서 처음 판결나온 16만 4000주만 홍 회장에게 양도한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
이와 관련해서 홍 회장의 법률 대리인 이정호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사기로 1심 재판 선고까지 받고 실형을 살고 있는 피고인이 유상증자를 강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홍 회장에게 지분 양도를 이행할 의사 없이 유상증자를 감행하는 거라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식의 유상증자는 전형적으로 기업 지배권을 장악하고, 향후 M&A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영권 관련 분쟁이나 매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기업 고유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성은 회장도 900만 주로 유상증자를 꾀하는 히어로즈 측의 의도가 페어플레이에 어긋났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전 대표가 왜 유상증자를 하려는지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이건 법원의 판단을 왜곡 희석시키고 사법부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회장은 “일반 기업도 아닌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게 문제”라면서 “대주주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공정한 룰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 불안한 히어로즈, 지켜보는 KBO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KBO는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물론 KBO는 이 전 대표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규약 제 152조 제5항’에 의거해 이 전 대표를 프로야구 관련 업무에 한해 직무정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법이다. 넥센 구단은 이 전 대표가 구속된 후 ‘이장석 대표이사가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준상 신임 대표이사 사장이 KBO 이사직을 포함해 각종 대내외적 활동 등 구단 경영 전면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 전 대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고, ‘옥중 경영’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기자한테 은밀한 제보가 전달됐다. 최근 넥센 구단 내부에서 이 전 대표가 오는 7월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KBO로부터 직무정지 상태인 이 전 대표가 구단주로 복귀한다는 게 가능한 것일까.
사진=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홍성은 회장의 법률 대리인 이정호 변호사는 “아직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7월까지 결심과 선고가 이뤄질지 모르겠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KBO 장윤호 사무총장도 “직무정지 상태의 이 전 대표가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해서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번 상상을 뛰어 넘는 일을 벌였던 이 전 대표가 옥중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을 거란 예상은 가능하다.대주주의 권위를 내세워 신주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로 운영 자금 확보에 나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야구인은 KBO와 ‘클린 베이스볼’을 주장하는 정운찬 총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범죄자는 KBO 야구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끔 퇴출시키는 게 합당하다. 지금처럼 방치하거나 수수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면 KBO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KBO 정관을 살펴보면 총재한테 무한 능력이 주어진다. 총재는 어떠한 의사 결정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 총재가 그 정관을 제대로 이해하길 바랄 뿐이다.”
실제로 KBO 규약 부칙 제1조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총재는 리그의 무한한 발전과 KBO 권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KBO 규약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도 제재를 내리는 등 적절한 강제조치를 할 수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KBO 입장은? “지금으로선 또 다른 제재 가하기 어려워” 그렇다면 KBO는 히어로즈 사태와 이장석 전 대표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 걸까.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히어로즈 구단 운영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히어로즈 관계자가 이장석 전 대표 면회를 간다고 해서 ‘옥중 경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KBO가 간섭하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구단 관계자가 최대 주주 면회를 가는 걸 두고 KBO가 무슨 권리로 뭐라 할 수 있겠나. ‘옥중 경영’을 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찾아내나. KBO는 이 전 대표가 법정 구속되자마자 바로 직무 정지를 내렸다. 앞으로 최종 판결이 나오는 걸 보고서 추가 징계를 내리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히어로즈가 신규 발행을 통해 유상증자를 강행한 것과 관련해서도 경영권 방어의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했다. 자본금 마련을 위한 경영 행위라고 이해했다. “넥센타이어가 다시 스폰서비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내년에도 후원을 이어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히어로즈로선 유상증자를 통해 미리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전 대표가 홍 회장에게 40%의 지분을 양도하라는 사법부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선 “KBO가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판결은 그렇게 내렸지만 강제 집행권을 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KBO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장 총장은 “향후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는 취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KBO가 또 다른 제재를 가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