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수예 주지스님, 포교 위해 관상과 풍수지리학 등 동양철학 전공
- “스님의 행동 하나하나, 언행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법문”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소재 ‘연화사’
[영덕=일요신문] 안대식 박상욱 기자 =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5월22일)을 맞아 불교신자들에게 관상과 사주, 풍수지리학을 통해 생활포교를 전하고 있는 영덕 지역의 사찰 주지스님(법명 석수예)을 ‘일요신문’이 만나 봤다.
경북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소재 ‘연화사’는 오는 2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법당 경내에는 온갖 형형색색의 연등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연화사’ 주지스님이 법당에서 합장기도를 하고 있다.
마침 주지스님은 대웅전 법당에서 합장기도를 하고 있었으며, 연화사 경내에는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인 ‘관세음보살’이 온화한 미소로 취재진을 반겼다.
주지스님이 취재진에게 연화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주지스님은 취재진을 주지실로 안내 한 후, 향기가 짙은 녹차를 권했고, 기자는 녹차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연화사’ 주지 석수예 스님 일문일답.
- ‘연화사’는 어떤 사찰인지
“불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찰,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는 사찰, 불자들의 경조사를 맡아 줄 수 있는 사찰로 건립했다.”
- 관상과 사주, 풍수지리학을 통해 생활포교를 전파하고 계시는데
“인간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환경이 잘 갖춰진 명당에 집, 상가, 회사를 지어 살거나, 형국이 잘 갖춰진 명당에 혈(穴)을 찾아 조상의 체백을 모셔 ‘동기감응’으로 발복을 받아 좀 더 발전된 삶을 영위하며 복된 삶을 추구하는 것이 풍수지리의 목적이다. 즉 자연을 보고 읽어 인간의 삶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 신도들에게 주로 어떤 포교를 전하는지
“신도들에게 보시를 많이 하라고 한다. 나는 포교를 위해서 관상과 풍수지리학 등 동양철학를 전공해 신도들이 고통을 받는다든지 일이 해결이 안 된다고 할 때 설명을 해주고 있고, 부처님이 강조하신 무재칠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고 있다.”
관세음보살
- 경내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의미는
“천 가지 손과 천 가지 눈을 가지신 보살이라고 하는데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뜻이 있다. 그래서 우리 사찰에 모시게 됐다.”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행사 준비는
“특별하게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없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전국의 사찰에서 연등행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 사찰에서도 똑같이 할 계획이다.”
- 사회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계신다는데… 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하는가
“저하고 인연이 된 신도들 중에서 한 순간 잘못 생각해 교도소에 들어간 신도들이 우편으로 연락이 오게 되면 교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 처음 왔을 때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하신 분이 왔었는데 취직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이유는 전과 7범이다 보니 사회에서 안 받아줘서 취직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이 인천에서 추운 겨울날 아는 지인의 사무실에서 찬 바닥에 잠을 자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그런 인연으로 해서 교도소에서 편지가 와서 약이나 책, 의복, 사식 등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요즘은 미성년자들에게 도움의 요청이 오면 성인이 아니기에 더 더욱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연화사’가 다른 사찰하고 차이점이 있다면
“보통 작은 사찰은 암자라고도 하고 토굴이라고도 한다. 토굴 같은 경우에는 스님들이 혼자서 생활하면서 수행을 하고 있는데, 이곳 사찰은 다른 사찰하고 다르게 역사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과거 위에 법상선사님 계셨고, 그 밑에 나의 스승이신 혜공선사님이 계셨다. 혜공선사님이 법상선사님을 약 50년간 시봉을 하셨다. 평생을 참선을 하시다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나는 병중에 계신 혜공 은사스님을 15년간 시봉을 하면서 모셨다. 그게 다른 사찰하고의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 큰 사찰을 세울 생각은 없는지
“초막에다 부처님을 모셔도 모든 부처님이 오신다. 옛 조사님께서 ‘토굴이 공부하는 곳이 바로 부처님 전당이다’고 말씀하셨다. 큰 사찰은 새로 지을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민가를 개축한 절로써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들렸다 갈 수 있는 절이 되길 바란다.”
- 신도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말 있는 법문은 알아듣고 말 없는 법문은 왜 알아듣지 못하느냐 법문이란 스님의 행동 하나하나, 언행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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