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9일 학교 기숙사를 불법 촬영한 영상이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영상 속 장소는 경기도 남부에 소재하고 있는 A 고등학교 여자 기숙사로 알려진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올해 3월 해외 SNS인 ‘텀블러’에 기숙사 내부를 몰래 촬영한 영상이 여러 개 올라오면서 불거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이용자들만 공유하고 있었을 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진 않았다. 문제는 지난 9일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촉매제가 됐다. 고등학교 여자 기숙사 도촬 영상이 돌고 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텀블러에 올라온 영상 섬네일이 게재된 것. 이를 계기로 문제의 도촬 영상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현재 도촬 영상이 올라왔던 텀블러 계정은 삭제된 상태다.
5월 9일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 따르면 “시리즈물로 유명하다. 용량은 4.9GB고 공유해달라는 댓글만 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며 “영상은 여학생들이 옷 벗는 장면만 모아서 3시간이 넘는다고 한다”고 한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유포된 영상들은 이미 수년 전 촬영된 것으로 개별 동영상의 길이는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전체 길이가 3시간이 넘는다는 얘기는 결국 길이가 짧은 개별 동영상의 개수가 매우 많다는 의미가 된다. 그만큼 피해자의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 피해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A 고등학교 졸업생 B 씨는 “영상의 파일명이 날짜로 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2010년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의 한 고등학교 여자 기숙사 내부를 몰래 촬영해 유포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일요신문DB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A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대응팀을 꾸려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2010년 즈음에 촬영된 도촬 영상인 만큼 졸업생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졸업생 B 씨는 “졸업생들 일부가 모여 대응 TF처럼 움직이고 있다. 현재 170명 정도의 졸업생들이 모여 단톡방을 통해 소통하고 있고 19명 정도가 집행부를 꾸렸다”며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에 올라온 영상 사진을 모아 구글 독스를 통해 공유하고 있고 공동으로 학교, 경찰 등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의 영상은 기숙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촬영됐다. 영상을 확인한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영상이 기숙사 뒷산이나 여자 기숙사 맞은편에 있는 남자 기숙사에서 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졸업생들 사이에선 학교 측이 ‘영상 속 건물이 본교 기숙사로 확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부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졸업생 C 씨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행정실 직원과 통화를 했는데 선생님들이 직접 뒷산에 올라가 대조를 해 보았고 영상 속 건물은 학교 기숙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고 들었다. 믿기 힘든 발언이었다”고 분노했다. 그렇지만 이후 C 씨가 변경된 내용을 추가하며 “(학교 측) 입장이 바뀌어 교무부장께서 영상 속 장소가 학교 기숙사가 맞다고 인정하셨다고 한다”고 덧붙이면서 논란이 잦아들었다.
졸업생들은 영상 속 장소가 모교 기숙사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영상에 등장하는 교복이 다른 학교 교복일 수 없는 데다 방 구조와 가구, 심지어 거울과 커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 졸업생 B 씨는 “사진을 보면 내가 3년 동안 살았던 학교 기숙사임이 무조건 확실하다. 학교 교복이 워낙 특이한데 영상 속 동복은 우리 학교가 아니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이라며 “기숙사 창문이 벽면의 절반 크기로 굉장히 크다. 커튼을 치지 않는다면 내부를 보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른 졸업생도 “(기숙사에) 3년 살았으면 그냥 딱 봐도 우리 기숙사라는 건 누구나 안다. 철문에 신발장, 커튼까지…”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일부 졸업생들은 이번 사건이 최근에서야 널리 알려졌지만 온라인상에서 정체를 드러낸 건 수년 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졸업생들이 보유한 캡처사진에 따르면 이미 2015년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저장소 등에 해당 학교 기숙사 도촬 영상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게시글은 영상이 도촬한 것인 데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데도 “부잣집 딸이라서 ×될까봐 못 올리겠음ㅎㅎ” “기숙사 맞은편에 사는 놈이 찍었던데 부럽노” 등의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은 동영상 유포자와 촬영자 검거를 목표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 역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최근 동영상이 올라온 텀블러가 해외 SNS인 데다가 촬영 자체가 수년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검거와 더불어 더이상 동영상이 유포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피해 여성들은 캡처사진과 유포된 영상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꾸려진 한 졸업생 모임은 5월 10일 “더 이상 본 사이버성범죄 사건으로 특정하여 공론화하지 않겠다. 학교 내 성폭력 실태를 학교가 외면해왔던 구조적인 문제에 방점을 두어 학교의 행동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며, 피해 제보도 계속 받을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