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출퇴근 때 대로를 가득 메운 채 달리는 퇴근길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도 붉은악마의 티셔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붉은 티셔츠는 월드컵 이후 베트남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최신패션의 하나였다. 배우 장동건이 광고 CF를 찍었다는 사이공문화회관(서울로 치면 세종문화회관쯤에 해당된다) 계단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신혼부부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기서 예비 신랑들은 장동건과 똑같은 포즈를 흉내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베트남의 한류(韓流)열풍은 이제 가요, 드라마, 패션뿐 아니라 한국 유명배우의 포즈까지도 모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한류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휴대전화와 가전제품, 심지어 김치 고추장 등 한국의 전통음식까지 선호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반만년역사를 자랑하고 민족문화의 독창성을 내세우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우리가 따라 배우고 모방하던 정보원(情報源)국가가 있었다. 19세기 말 개항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가장 큰 정보원국가는 중국이었다.
아직도 좋은 붓을 당필(唐筆)로 부르고 품질이 좋은 광목을 당목(唐木)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나라를 정보원국가로 섬기던 시절의 유산이었다. 개항 이후엔 일본이 우리의 정보원국가였고 해방 후엔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하쿠라이(舶來)’로 부르며 ‘마카오신사’를 부러워하고 좋은 물건 앞엔 으레 양(洋)자를 붙인 것도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을 선호하던 시절의 얘기다.
해방 후 한동안 우리 모두는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를 얼마나 선망했던가. 이처럼 수천년 동안 남의 나라 문물을 부러워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던 우리가 이젠 남의 나라에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게 되었으니 감격할 만도 하다. 더군다나 호치민시내를 다니는 버스중 상당수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 백화점들 등에서 셔틀버스로 운행하던 중고버스들이었다.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붙이고 다니던 행선지표지를 그대로 달고 다닌다는 점이다. 행선지뿐 아니라 버스에 붙은 백화점 이름까지도 그대로 달고 다닌다. 한국에서 수입해온 버스임을 은연중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동남아국가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이 일시적인 거품일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한류현상에 만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간 언젠가는 그 한류가 한류(寒流)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인 것이다. 한류가 이대로 가다간 한때 한국의 극장가를 휩쓸다 사라져버린 홍콩영화와 같은 운명이 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한류열풍은 진정한 한국문화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문화에 한국이라는 옷을 입힌 ‘얼치기 문화’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언젠가 이들 나라들의 경제가 한국을 따라잡고 미국이나 서구의 대중문화를 직수입하게 되면 굳이 한류에 기대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가창력보다는 예쁜 얼굴에 댄스만 익힌 가수들이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비슷한 소재를 되풀이하는 한국의 드라마에 이미 식상하기 시작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한류의 밑바닥에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아시아국가로서 짧은 기간에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 낸 한국을 동경하고 선망하는 심리도 깔려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적 성취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한국의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
베트남의 어느 신문 어느 방송에도 드잡이로 날을 지새우는 한국정치의 부끄러운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문화가 되었든 경제가 되었든 한국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쉽게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한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