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내가 물을 사 먹는 줄 알고 놀란 친구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수돗물을 받아 먹으라고 보낸 것입니다. 참숯을 넣은 항아리에 물을 받아 하룻밤 재우면 정수기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옛날 여자의 치마폭처럼 넉넉한 항아리에 현대여자인 내가 물을 채워 넣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며 나는 옛날 그 여자, 그 남자를 생각합니다. 그 여자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빨래를 하고 있었을까요? 그 남자는 빨래를 하거나 물을 긷는 그 건강한 여자의 소박한 모습에 반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 목이 말랐던 걸까요?
“낭자, 물 좀 먹읍시다.” 여자는 여자의 곁에 다가와 물을 청하는 그 남자가 정말 목이 마른 남자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괜찮은 남자가 연애를 걸어오는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맑고 찬 물을 길어 올립니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이 담긴 물바가지 위에 버들가지 한 잎을 떨궈 남자에게 건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요?
고려의 태조 왕건과 오씨 부인의 첫 만남일 수도 있고, 이성계와 강씨 부인의 첫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맑은 샘이나 깊고 청한 우물이 있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이야기니까요. 나는 믿습니다. 물이, 좋은 물이 자기 닮은 사랑 얘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샘물과 첫 만남, 차고 깨끗한 물위에 버들가지 한 잎과 첫사랑은 왠지 닮았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점에서도 닮았고, 함부로 다루면 탈이 난다는 점에서도 닮았습니다. 덥다고, 목이 마르다고 벌컥벌컥 들이키면 안되는 거지요. 찬물일수록 조금씩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참으로 길고 민망했던 지난 장마 때도 느낀 것이지만 물은 무서운 것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하고 본질적인 그 만큼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물에도 도가 있습니다. 아니, 물에 ‘도’라니요? 흘러야 할 때 흘러야 하고, 솟아야 할 때 솟아올라야 하고, 흐르지 말아야 할 때 흐르지 말아야 하는 물의 도는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도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가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물이, 기후변화와 더불어 중요한 주제라고 합니다. 이 회의에 환경운동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물을 상품화하려는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물을 금보다 귀하게 만든 환경파괴를 경고하는 책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인 모드 발로와 토니 클라크가 지은 <블루 골드>입니다.
<블루 골드>는 모든 생명의 삶의 원천인 물은 세계화로 보존될 수 없다고, 물 상품화에 반대합니다. 당장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주자고 마구잡이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마침내 지하수를 마르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승자박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세계화로 시장을 키우면 그만큼 물을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며칠 전 H신문에는 어떤 사진이 실렸습니다. 흘러야 할 때 흐르지 못하는 물 때문에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설명이 아니었으면 나는 사진 속의 그 사람이 치우는 게 썩은 나무기둥이 아니라 물고기였다는 걸, 그 바닥은 자갈밭이 아니라 저수지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진 설명이 이렇게 붙어있습니다.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의 한 저수지에서 주민이 말라죽은 물고기를 치우고 있다. 지하수 고갈,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민물 공급량이 달리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가 먹는 좋은 물은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콜레라와 설사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입니다.
바로 어떤 상표의 물이 좋다고 그 물만 고집했던 나, 재활용될 거라는 믿음도 없으면서 그 많은 페트병을 분리 수거함에 넣은 것으로 재활용될 거니까, 스스로 위로했던 내가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물을 물쓰듯해서도 안될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 없이 쓴 물이 그 누군가의 갈증이고 내가 오염시킨 그 물이 어떤 생명의 목숨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내 집에 들어온 저 넉넉한 항아리를 보면서 그동안 수돗물 못믿겠다고, 그러면 물 사먹으면 되지, 쉽게 생각했던 내 단순하고 무식한 태도를 참회합니다.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지킬 수 있는 자연은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