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등 오너 일가의 해외 물품 구입 과정 탈세 의혹을 수사 중인 관세청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물품 중 상당수가 신고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흐름에 정통한 사건 관계자는 “최근 관세청 등에서 자택 압수수색을 하며 의심이 가는 물품들 사진을 모두 찍어간 뒤 일일이 구매 시점과 반입 신고 및 탈세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이 가운데 고가의 가구 등 상당수는 이명희 이사장 등이 국내에서 구입했다거나 정상적으로 신고를 했다는 점을 설명했지만 일부 명품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세례에서 시작된 사건은 이제 오너 일가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탈세로 추정되는 금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상한 것으로 판단되는 물품 금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정확하게 언급해 줄 수 없지만, 생각보다 금액대가 엄청나다,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이명희 이사장은 일부만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이사장은 한진그룹을 통해 낸 장문의 해명에서 해외에서 명품을 밀반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비서실을 통해 과일과 일부 생활필수품을 구매해달라는 요청을 몇 번 한 바는 있다. 하지만 구매한 물품 중 명품은 없고 소액의 생활용품 위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해외 구매 과정에서의 탈세보다 ‘자금 출처’라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앞선 사건 관계자는 “지금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중요한 것은 어디서 사서 어떻게 국내로 몰래 들여왔는지가 아니라, 어떤 돈으로 샀는지 여부”라며 “지금 자금출처가 전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여차하면 비자금 등 오너 일가의 자금 부분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를 위해 관세청은 조 회장 일가의 신용카드 내역 등을 일일이 확인 중인데, 일부 물품은 신용카드 구매 내역에 없는 현금 거래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조 회장 일가의 수상한 돈 관리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500억 원대 탈세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는 서울지방국세청의 고발에서부터 비롯됐다.
국세청은 지난달 30일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는데, 국세청 조사 결과 조 회장 5남매는 아버지인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으로부터 해외 재산을 상속받으며 5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회장은 스위스와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 상당 규모의 부동산과 예금을 보유했는데, 2002년 조 전 회장이 사망한 뒤 이를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고 보유해 왔다가 덜미가 잡혔다.
대한항공 측은 “상속세 누락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2016년 국세청에 신고했다”고 밝혔지만 2016년 신고 이후에도 세금은 내지 않아 고의 누락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조 회장이 고의로 누락했는지, 추가로 신고하지 않은 해외 자산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한진 안팎에선 한진이 공식적으로 14억 5000만 달러(한화 1조 5600억 원)를 쏟아 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월셔그랜드호텔 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 대한항공.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윌셔그랜드호텔 사업 관련, 과도하게 자금을 집행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의혹도 들여다 볼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미국 호텔 사업에 1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할 때 미국 호텔이 비자금 저수지(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을 의미하는 말)라는 말이 계속 돌았다”며 “칼호텔 등의 비정기 세무조사 때 이 부분도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연스레 법조계에서는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전원 사법 처리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선 사건 관계자는 “지금 조 회장은 상속세 탈세, 이 이사장은 폭행, 조현아 전 부사장 등 3남매는 탈세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지 않냐”며 “워낙 국민적 공분이 커서 조 회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돼도 이상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