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 스님-
이미 당신 안에 봄이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눈 속에 핀 당신 마음 속의 매화, 보셨습니까? 마음 속에서 매화를 보고 봄을 본 부처는 봄을 찾아 동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매한 중생은 봄을 찾아 산에 오릅니다.산에는 여전히 잿빛나무뿐인데도 산빛이 살아납니다. 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화사한 빛, 따뜻한 빛, 부드러운 빛, 그 빛을 받아 꿈틀꿈틀 살아납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겨우내 메마르게 서있던 나무들이 이제 물이 올라 팽팽해지고 있습니다.축복처럼 쏟아지는 고운 햇살 때문에 바람은 감미롭게 감기고, 계곡을 흐르는 물은 아이의 웃음처럼 거침없습니다. 겨우내 언 땅은 녹아서 폭삭폭삭, 부드럽게 밟힙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처럼 마음은 들뜨고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눈길은 부드러워집니다. 나는 봄빛에 깨어나는 산을 분명히 느낍니다. 내 속에 흐르는 강원도 피 때문일까요? 나는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고”라는 말의 리듬감을 사랑합니다. 그 리듬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 통해 있다는 철학을 충만하게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산을 떠나, 들을 떠나 비대해진 도시는 물이 좋지 않습니다. 더구나 ‘더불어 삶’이 사족이 되어버린 도시의 아파트, 빌딩 숲에서는 사람이 좋은지 아닌지, 속 깊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당신이 속깊은 사람인지, 아닌지. 도시의 삶은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고걖걾 그 문장의 리듬감을 까먹었습니다. 이제 도시의 아이들은 이렇게 당당합니다. 산 좋다고 물 좋은가? 물 좋다고 사람 좋은가? 그건 비논리야! 생명은 서로 통해 있습니다. 산이 좋으면 물이 좋고 물이 좋으면 생명들이 윤기가 납니다. 빛과 바람과 생명이, 물과 나무와 공기가, 땅과 식물과 동물이 서로서로 의존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중국의 황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는 것 자체가 만 생명의 은혜라고, 그것을 말로 떠들게 아니라 삶으로 느껴야 한다고 하는 수경 스님. 그는 지금 북한산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수도권 시민들의 허파 노릇을 하고 있는 북한산에 왕복 8차선이나 되는 도로를 뚫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막으로 만든 기도도량은 터널의 입구가 될 곳이라고 합니다. “동산 하나 넘어지는 게 이렇게 쉬운 줄 몰랐습니다. 폭약 몇 번 터뜨리고, 포클레인으로 이틀 시끄럽고 나니까 산 하나가 없어졌어요. 그와 함께 죽어간 생명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고생도 아닙니다.”바로 저기가 예쁜 동산이 있었던 자리라고 손을 가리키는데 시뻘건 흙더미와 돌더미가 흉물스러울 뿐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북한산은 국립공원입니다.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던 것일까요? 자연생태계를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주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국립공원을 지켜야할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산뿐 아니라 노고산 불암산 수락산까지 꼬치꿰듯이 뚫겠다니 이 무슨 난리입니까?
북한산 문제는 단순히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에 있는 70여 개의 사찰환경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바로 보는 문제입니다. 돈만 되면, 편리한 생활만 되면 뭐든 괜찮다는 그 탐욕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산과 들은 몸살을 앓을 것이고, 마침내 모든 국민은 30층이 넘는 아파트에서 자연과 담쌓고 문명의 바벨탑만을 쌓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수경 스님이 천막에 모여든 몇몇의 마음들과 마음을 나눕니다. “내 사는 것 자체가 만 생명의 은혜라는 그 마음, 바리공양을 하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마음이야말로 부처의 마음입니다. 불사란 절집 짓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들을 지키는 일입니다.”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핀 매화를 보지 못하고는 우리의 봄은 이미 우리의 봄이 아니라고. 내 마음 속에서 매화를 보고 봄을 봐야 우리의 봄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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