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닭소리와 개울음소리를 잘 내던 식객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맹상군(孟嘗君)은 3천 명의 식객을 거느렸다고 한다. 맹상군은 초(楚)나라의 춘신군, 위(魏)나라의 신릉군, 조(趙)나라의 평원군과 함께 많은 식객을 거느려 전국말기의 4군(君)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들이 거느리고 있는 식객들은 ‘주군’에 대한 기여도나 정보와 전략의 쓰임새에 따라 대접도 조금씩 달랐다.
아예 기숙사 같은 데서 합숙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능력이 뛰어난 식객은 사랑채에서 주인과 숙식을 같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적인 꿈은 주군이 권력을 잡았을 때 ‘성공보상’으로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오랫동안의 신산(辛酸)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물러나는 부류도 있었고 더러는 푸대접에 대한 앙심으로 주군의 등뒤에 비수를 들이대는 자객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 식객들은 요즘도 보좌관이니 수행비서니 특보니 하는 식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남아있다. 요즘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일하는 전직 언론인이나 현직교수 등도 따지고보면 새로운 형태의 식객일 뿐이다. 지난 92, 97년 대선 때에 보았듯이 후보들간의 세불리기 경쟁을 하다보니 때로는 총재 또는 후보의 특보가 40여 명에 이르기도 한다.
옛날의 맹상군이 3천 명 식객을 자랑했듯이 ‘주군’의 대권장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치적인 세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각 후보의 대선캠프에서 일하는 특보나 참모 등은 많으면 많을수록 세 과시에 좋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이들 ‘집권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식객들은 집권 뒤에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보상을 기대하고 후보에게 충성을 바치게 마련이다.
정권이 바뀌면 내각은 물론 정부투자기관의 장(長)에서부터 감사자리까지 싹 바뀌는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뜻도 있지만 그 보다는 그동안 고생한 ‘식객’들에게 자리나 이권을 나누어주기 위한 논공행상의 뜻이 더 크다. 그러다보니 정권이 바뀌면 정부투자기관장이나 심지어 해외공관장의 정해진 임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전 정권에서 임명한 자리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기엔 5년이란 대통령임기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뀐 뒤 정권실세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그동안 대선을 위해 뛰어준 ‘식객’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얼마전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기록이라고 주장하면서 폭로한 내용에도 취직부탁 전화가 상당수 들어있다. 대선운동을 지원했던 아무개가 아직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이번에 어느 자리에 가도록 힘써달라고 하자 장관에게 부탁해서 어느 정부투자기관의 감사로 선임하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건 비단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의 사정만은 아니다. 앞으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든, 아니면 다른 제3의 후보가 당선되는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선이 끝나면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나누어주거나 이권을 챙겨주는 것은 당선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보은(報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각 후보진영에서 발표하는 참모들의 명단을 보면서 집권에 성공한 뒤 이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배치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식객’들의 자리마련을 위해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바꾸어치는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