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일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입는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먹고 사는 방송가와 연예계에서는 ‘일베’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활동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일베가 뿌려놓은 덫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얼핏 봐서는 구분할 수 없는 변형 사진을 비롯해 그들만의 신호가 담긴 표현이나 손짓 등이 적지 않다. 의도성은 없다고 해도 은연중에 비슷한 언행을 했을 경우 ‘일베’로 매도당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하기 위해 일베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전지적 참견시점’은 정말 일베과 관련이 있을까?
‘전지적 참견시점’을 둘러싼 논란은 이 프로그램의 MC인 방송인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 특보 화면을 쓰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세월호 유가족을 ‘어묵’으로 비하하는 표현은 주로 일베에서 쓰이며, 하필 해당 장면에 세월호 사건 이미지를 쓰며 자막으로 ‘어묵’을 붙인 것에서 상당한 의도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MBC 조사위원회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벌인 고의적 행위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누리꾼들의 의심을 지워주진 못했다.
방송 화면 캡처
MBC는 이 사태 전에도 일베 회원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여러 방송에서 사용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지난해 9월에는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이그룹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뉴스를 내보내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루엣 사진을 무심코 사용해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인형의 저주에 관한 사연을 소개하며 한 남성의 실루엣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 사진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과 윤곽선이 동일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2015년 방송된 ‘뉴스데스크’에서는 ‘월드컵 2차 예선, 쿠웨이트-레바논과 한 조 중동 원정 고비’ 뉴스를 다루며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합성된 월드컵 트로피 이미지를 사용해 도마에 올랐다.
SBS 역시 지난 2013~2015년 사이에 일베 이미지를 방송에서 사용한 사례가 약 10건 정도 됐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SBS 자회사인 SBS플러스의 시사 풍자 프로그램 ‘캐리돌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사진을 사용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사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진에 ‘Go To Hell Mr. Roh(지옥에 가라, 미스터 노)’라고 쓴 이미지를 입혔다. 결국 당시 인기를 끌던 ‘캐리돌뉴스’는 폐지됐고 프로그램 관계자는 징계를 받았다.
당시 SBS 박정훈 사장은 인트라넷을 통해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뿐 아니라 방송사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모든 포털에 있는 이미지 다운로드 무단 사용 금지, 외부 사이트의 이미지 사용 시에도 반드시 상위 3단계 크로스체크를 해야 한다는 등의 내부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 일베 연예인, 진짜 있을까?
몇몇 유명 연예인도 ‘일베 회원’이라는 루머에 휩싸여 고초를 겪었다. 그들이 직접 일베 회원이라고 밝힌 적은 없지만 그들의 말이나 행동이 일베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2013년 ‘빠빠빠’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크레용팝이 대표적이다. 크레용팝의 멤버가 쓴 ‘노무노무’(너무너무)가 일베 내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연말 시상식에 참석한 크레용팝이 일베 회원임을 인증하는 손동작을 썼다는 구설에 올랐다. 멤버 엘린이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동료 옆에서 알 수 없는 손 모양을 취했는데, 이 동작이 일베 회원임을 알리는 행위라는 지적이었다. 소속사는 이는 사실무근이며, ‘노무노무’라는 단어 역시 귀엽게 말하려다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때 일베 회원 논란에 휩싸였던 걸그룹 크레용팝.
배우 하석진도 일베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2013년 남성연대 대표였던 성재기 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자 그가 일베를 좇는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이에 하석진이 자신의 SNS를 통해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고, 이 발언은 또 다시 일베 회원들을 자극하는 양상으로 번졌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이 생기기도 했다.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였던 전효성은 지난 2013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에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민주화시키다’는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매도하며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일베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수 겸 방송인 김진표는 과거 자신이 진행하고 있던 XTM ‘탑기어 코리아 시즌2’에 출연해 헬기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운지를 하고 만다”고 발언해 파장이 커졌다. ‘운지하다’는 일베 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 일베, 무시해야 하나? 공부해야 하나?
이렇듯 부지불식간 일베의 표현이나 이미지를 써서 잦은 논란이 불거지자 방송이나 연예 관계자들도 난감함을 표하고 있다. 정말 모르고 한 일이 뜻하지 않은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베는 불법단체가 불법사이트는 아니다. 그곳의 콘텐츠를 보는 것만으로 비난을 받는 것 또한 온당치 않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쓰는 표현이나 이미지가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비난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제작진이나 연예인들은 각별하게 더 신경써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일베의 비뚤어진 표현을 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인터넷 등에서 무단으로 자료를 가져다 쓰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시간적 노력이 들더라도 정식 루트를 통해 자료를 구한다면 일베 이미지를 사용하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며 “연예인들의 경우 소속사 차원에서 관련 교육을 통해 실언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바른 언행을 갖추는 것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공인의 자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