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불만은 급변하는 사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기업이 필요한 첨단 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수행이나 교육과정 운영에는 큰 변화가 없다. 무한경쟁시대에 국제경쟁력을 확보 못하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기업들로서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낙후한 이유는 지나치게 난립된 대학들이 학과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몸집불리기만 하고 있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졸업장이 사회적 위치와 대우를 정해주는 간판 위주의 사회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또 대학마다 열악한 재정을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있다.
대학이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연구와 교육기능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나라가 쇠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대학은 오히려 기업보다 앞서 구조 개혁을 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물론 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대학은 기존의 권위와 기득권을 백지 상태로 돌리고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연구와 교육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핵심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는 대학의 발전이 대학자체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획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학 발전은 요원하다. 선진국의 유수 대학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대학들의 예산은 10분의 1 수준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5배가 넘는다. 교수당 연구비용은 20분의 1밖에 안 된다. 교수 봉급은 기업 중견 사원만도 못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 아래서 대학들이 어떻게 창의적인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리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연간 사교육비가 20조원이 넘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대한 투자는 개념조차 희박하다. 대학에 보내기 위해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돈을 쓰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공교육을 살리는 획기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대학입시제도를 자율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 대한 투자를 집중하여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편 대학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이익을 버는 기업들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기업들은 마치 특혜를 베푸는 것처럼 대학생들을 채용하고 돈벌이에 필요한 지식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 그리고 우리 교육 자체를 부정하고 자녀들을 해외에 보내 지식식민지를 자처하고 있다.
대학은 기업들을 위한 직업훈련장이 아니다. 대학은 학생들이 올바른 사고와 행동을 하고 필요한 교양과 학문을 터득케 하는 전인교육기관이다. 따라서 기업은 기본학문과 사고능력, 국가관, 인성 등을 올바르게 갖추었는가 평가하고 채용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실무적으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해당 기업이 교육하는 것이 수순이다. 기업들이 주장한 대로 그렇게 대학 교육이 엉터리라면 지난 40년간 어떻게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기업이 대학에 대해 불평 대신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기업은 우수 학생들을 채용하여 돈을 버는 영리기관이다. 그렇다면 수익자 부담원칙에 의해 대학에 투자를 해야 한다. 대학에는 단돈 몇백만원을 안내고 몇백억을 들여 연수원을 짓는 기업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만일 기업들이 자체 연수에 투자하는 돈의 몇 분의 일만 투자해도 우리나라 대학 교육은 달라진다. 그리고 첨단지식과 기술을 개발하여 기업과 함께 발전하는 공생체제가 될 것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들이 신규채용 인력에 대한 재교육비만 2조8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돈의 대부분이 결국 대학에 투자를 안해서 스스로 부담하는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업들 스스로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기업들의 대학에 대한 투자가 간절히 요망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