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일남 언론인 | ||
그뿐인가. 가령 자국민이 ‘악의 축’ 수준의 국가에 납치되거나 볼모로 잡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내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그와 같은 내용을 다룬 영화 또한 많았거늘, 상업적 과장이야 어떻든 비현실적인 드라마가 결코 아니라는 인식을 뒷받침하고도 남았다.
북한에 묻혀 있던 유골을 판문점을 통해 들여오는 장면은 하물며 부러웠다. 간략하지만 엄숙한 분위기로 격을 갖춰 맞아들이는 모습에서 미국은 역시 다르구나 느꼈다. 요새는 유골 수습 지역을 중국의 옌볜(延邊) 지역으로까지 뻗쳤다는 소식이다. 집요한 의지가 놀랍다.
국민들의 생명을 그토록 귀히 여기는 미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목숨도 그만 못지 않게 존중해야 한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데 이 땅의 두 소녀 죽음에 대한 일련의 자세는 어떤가.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토머스 허버드 미 대사가 미군측 책임을 일단 표명하고 나섰다.
해당 부대원들이 추모행사를 열고 성금을 모았다.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일이다. 평가할 만하거니와, 한국 법무부가 요청한 미군의 재판권 포기를 전향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종전과 마찬가지 형국이 된다.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말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또 다시 앙금만 쌓이기 쉽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의 신효순 심미선양은 올해 열네 살. 말 똥 굴러가는 것만 보고도 깔깔댄다던 꿈 많은 나이다. 둘이서 엎디면 코 닿을 데에 있는 친구 생일을 축하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날 그들이 집채 만한 미군 궤도차량에 깔리지만 않았더라면 필시 노래했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또래들의 해맑은 목소리로, 이제는 미국식 생활문화의 이식으로 자연스러운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신명나게 불렀을 터이다.
그런데 두 소녀는 말이 없다. 딸자식을 길러 본 사람은 그래서 한층 슬프다.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던 라포트 사령관도 그 점을 비감스럽게 짚었다. ‘애석하게도 소중한 두 어린 여학생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음에 우리는 더 큰 슬픔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진상을 밝히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말보다는 정확하고 투명한 증거를 앞세우는 미국의 법정신을 살려,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자체내 조사 대신 한국의 사법권을 존중하는 태도가 소망스럽다. 지금까지는 일본에서 보인 뒷감당 수준에도 훨씬 못미친다.
재작년 여름,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공군기지 소속 미 해병이 술에 취해 일본 여중생을 강제추행한 사건을 생각해보자(뒤이어 공군 하사관의 뺑소니 사고가 겹쳤다). 미군 사령관이 오키나와현 지사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일본 외상은 외상대로 주일 미국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그런데도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마침내 클린턴 대통령이 현지로 날아갔다. 2000년 7월21일이다.
대통령은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미일 간에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평화의 비’ 앞에서 연설했다. 일본 전체의 0.6%에 불과한 섬에 주일 미군기지의 대부분(75%)이 몰려 고통이 클 것이라며 현민을 달랬다. 오키나와 대학생들의 하와이대 연수를 돕는 장학금 제도 신설도 약속했다.
사정이 다른 오키나와와 이번 경우를 맞바로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사건의 정도로 치면 한국 소녀들의 죽음은 얼마나 더 참혹한가. 지금껏 경험한 갖가지 누적된 사건들을 떠올리면, 그리고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걸 생각하면 전망이 어둡다.
한미관계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서도 이 기회에 참사 방지의 좀더 확실한 장치를 구축할 필요가 절실하다. 올 봄에도, 오키나와현 지방법원은 수년 전 가데나 미군기지 주변에서 20대 일본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미 공군 소속 하사관에게 징역 2년8월을 선고했다. 한미, 미일의 ‘소파’ 차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격차가 너무 크다.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닌 줄 안다. 국회는 언제나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오불관언이다. 나라의 체통과 자존심을 살리는 차원에서라도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선후지책을 강구함직한데,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이 사건 역시 시간과 더불어 흐지부지 망각의 담 너머로 꼬리를 사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