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신해혁명으로 청(淸)왕조를 쓰러뜨린 쑨원(孫文)도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을 둥지로 삼았다. 1895년 광조우에서 거병했다가 실패한 쑨원은 일본, 하와이를 거쳐 96년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 청국공사관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그는 ‘런던피난기’를 발표했으며 대영박물관 도서관을 드나들며 자신의 정치사상인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체계화하기도 했다.
19세기 고국에서 추방당한 사상가와 혁명가들이 영국의 런던을 찾았다면 20세기의 박해받는 지식인과 좌절한 정치인들은 곧잘 미국에다 자신의 둥지를 틀곤했다. 나치 치하의 독일을 탈출한 지식인이나 과학자들은 대부분 미국행 여객선을 탔다.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5·16군사쿠데타 이후나 1972년 유신선포 이후 또는 80년대 신군부 집권 이후에도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이 박해를 피하거나 정치적 재기를 위해 미국에다 둥지를 틀곤 했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도 좌절을 맛본 정치인들은 영국이나 미국을 즐겨 찾는다. 지난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쓴잔을 마신 김대중 후보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에서 재기의 꿈을 가꾼 뒤 귀국, 97년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좌절한 뒤 끝내 노 후보에 대한 지지마저 철회했던 정몽준 의원이 곧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학 국제문제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역시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에서 명예 교환교수 자격으로 연구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좌절한 정치인들이 미국을 찾는 것은 옛날 중앙정계에서 발판을 잃은 정치인들이 낙향해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며 재기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옛날의 선비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나 강호(江湖)에 묻히는데 비해 지금은 외국의 연구기관으로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국제화시대가 되다보니 이제는 낙향 대신 외국에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모양이다.
정치적으로 좌절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멀리 외국으로 떠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앙정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기피하고 싶은 심리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한 시대에 미국에 나가 있다고 해서 국내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의 대도시들은 심정적으로는 제주도와 다름없을 정도로 가깝다. 뉴욕이나 LA에선 한국에서 발간되는 일간신문들을 서울 독자와 거의 같은 시간에 받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텔레비전 연속극이 식탁의 일상적인 화제가 되는 곳이 미국 교포사회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국내정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에다 둥지를 틀어서 잠시나마 국내정치에서 떠나고자 하는 이른바 ‘정치적 망명’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적 재기를 위해서나 패배에 따른 좌절감을 달래기 위해서라면 굳이 미국까지 갈 것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국내에 있으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에 헌신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더 보람있는 선택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