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세계숍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문 대통령 블렌딩’ 상품
지난 4월 17일 청원자 A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최근 몇 달 동안, ‘정치신세계’ 방송이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과 성함이 포함된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의 퍼블리시티권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치신세계숍’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어디서나 간편하게 ‘문프’의 향을 느껴보세요, 문블렌드 드립백”, “문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입맛, 그 비결을 따라간 문블렌드” 등의 광고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커피 블렌딩 상품을 문 대통령의 캐릭터가 그려진 드립백커피 봉지에 담아 팔고 있다.
‘문블렌드’ 뿐만이 아니다. 정치신세계숍은 ‘미식가요 문블렌딩CD‘이라는 이름을 붙인 음반 등도 판매하고 있다.
A 씨는 “행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며 “청와대에 직접 문재인 대통령님의 성함과 퍼블리시티권 사용을 허가 하였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정치신세계숍이 문 대통령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퍼블리시티권은 특정인의 이름·얼굴·이미지 등의 경제적인 이익 또는 가치를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사진이나 이름, 목소리 등을 상품화해 판매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동의가 없는 판매에 대해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판례는 퍼블리시티권을 독립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2006년 “퍼블리시티권에 관해 우리 법에 규정은 없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법령과 판례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며 “사회의 발달에 따라 퍼블리시티권이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퍼블리시티권을 독립적인 권리로 인정할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는 것은 민법상의 불법행위다”고 판시했다.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치신세계숍의 문 대통령 관련 상품 판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애리 변호사는 “유명 정치인이 문제를 삼으면 퍼블리시티권이나 초상권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통 유명인은 홍보 목적으로 유통을 묵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인격권에 포함된다. 인격권 영역은 개인이 문제삼지 않는 한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본승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문 대통령의 동의 없이 상품을 팔았다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민사적 불법행위다”며 “일단 권리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하고,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판매를 자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치신세계숍 관계자는 “음반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의 퍼블리시티권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문블렌딩은 일반명사다. 문 대통령이 즐긴 커피 블렌딩으로 유명해져서 다른 카페에서도 전부 팔고 있다. 캐릭터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초상권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종의 놀이문화로 봐야하는데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정치신세계숍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문 대통령 캐릭터 ‘폰케이스’
그렇다면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중’은 어떨까.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5월 14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사안에 따라 다르다. 초상권 문제가 법률적 검토를 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일인지 모르겠다. 소송을 검토한 일은 없다”며 “다만, 실무자들이 최근 문 대통령 관련 상품을 파는 관련자들에게 주의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퍼블리시티권의 과도한 사용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정치신세계숍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2018년 1월경 정치신세계숍은 “‘2018 문꿀 다이어리’, ‘이니굿즈 핸드폰 하드케이스’, ‘풀리템즈 노트 세트’ 등을 팔았다. 당시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정치신세계숍은 일부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정치신세계숍은 문 대통령과 관련된 일부 상품에 대해 여전히 페이스북(SNS)을 이용한 홍보를 계속해오고 있었다. 5월 13일 정치신세계숍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문파, 머그컵’ ‘문꿀 다이어리, 속죄의 에디션’ ‘이니템 브랜드 스토리’ 등 상품에 대한 홍보 이미지가 가득했다.
특히 2월 8일 정치신세계숍은 페이스북에 “문파형 보드게임, 임실장을 고향으로”라는 홍보 포스터를 게시했다. 포스터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진과 함께 “자유재앙당 발목잡기, 이니굿즈득템, 이니야커피한잔” 문구를 소개하고 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임 비서실장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도 우려된다.
시민들도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조 아무개 씨(33)은 “좀 과한 것 같다. 제가 한국당 정치인에 관련된 상품을 산다고 해도 지하철에서 드러내놓고 다니기는 힘들다”며 “저런 제품들을 판매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만 옳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놀이라고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선을 계속 넘다보면 ‘그들만의 리그’에 갇힐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일요신문’은 지난 15일 정치신세계숍 측에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정치신세계숍의 페이스북 홍보 문구는 삭제됐다. 정치신세계숍 관계자는 15일 “청와대가 일부 업체들에게 주의조치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지적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 청원 내용을 확인한 이후 스마트폰 케이스 노트 등 문 대통령 캐릭터가 들어간 일부 상품을 내렸다. 대통령의 서명, 청와대 마크, 사진을 직접 사용하진 않았지만 얼굴을 자세하게 그린 상품들에 대해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