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공사로부터 한 달 전 들은 얘기가 그대로 예언처럼 실행되고 있다.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하며, 뒤로는 과거의 전략(번복)을 그대로 하고 있지 않냐.” (북한 전문 외교계 관계자)
북한은 당초 16일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해, 당일 새벽 일방적 통보와 함께 전격 취소했다. 북한이 문제로 삼은 것은 한미연합군사훈련(‘2018 맥스선더’ 연합공중전투훈련).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이번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로 우리에 대한 ‘최고의 압박과 제재’를 계속 가하려는 미국과 남조선의 변함없는 입장의 반영”이라며 남북고위급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맥스선더 훈련은 미 공군의 레드 플래그 훈련을 벤치마킹해, 한미 공군이 연 2회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훈련이다. 한미 공군 소속 전투기들이 대항군을 편성해 실전처럼 진행하는데, 지난 11일 시작됐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를 겨낭하여 벌어지고 있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미 11일부터 시작된 이 훈련을 지적하는 것은 ‘핑계’거리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책임분석관은 “미 공군 F-22 랩터가 참여한 한미연합공군훈련 맥스선더는 이미 4일 전부터 시작됐다, 이는 북한을 압박하기보다는 미국과 한국 전투기 간 아군식별 등 통상적이고 정례적인 훈련의 일환”이라며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상 가능한 훈련에 대해 이제 와서 북한이 문제 삼는 것은 다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16일과 17일, 이틀 모두 날씨가 좋지 않아 전투기가 무리하게 훈련을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북한이 새벽에 이를 문제 삼고 회담 불참을 통보한 것도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북한전문가 초청강연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연스레 일각에서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지난 14일 국회 기자간담회 발언 내용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북한은 이날 보도에서 맥스선더를 언급하며 말미에 “남조선당국은 우리와 함께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서도 그에 배치되는 온당치 못한 행위에 매달리고 있다”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선언을 비방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태영호 전 공사의 국회 강연과 기자간담회를 맹비난했다.
대북 전문 외교계 관계자는 “태영호 전 공사가 국회에서 한 발언들을 놓고 보면, 북한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최고존엄을 모독함과 동시에 북한 인권에 대해 매우 냉철하게 비판한 부분이 있다”며 “가장 예민한 영역을 건드렸다는 것에 대해 북한 특유의 외교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태 전 공사는 국회에서 열린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인권과 김정은 북한 위원장에 대해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사람의 시야에서 착각을 일으키는 데 능한 사람“이라며 ”남북정상회담 이전엔 남한에서 김 위원장을 ‘악마 같은 존재’라고 했는데, 쇼맨십 한번 하고나니 국민들의 신뢰도가 78%까지 올라섰다“고 경고했다. 또 그는 ”우리가 말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강제 사찰과 무작위 접근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북한과 같은 수령체제에서는 권력의 핵심을 허무는 것“이라며 ”완전한 CVID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한 접근을 조언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북한 인권 전문가는 “태 전 공사의 지적은 신중하게 북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접근”이라며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북한 인권은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악화되는 요소도 있다, 태 전 공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북한에는 매우 아프게 와닿을 것이고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까지 지내며 북한의 이중적인 요소를 모두 겪은 태 전 공사는 북한 입장에서 눈엣가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태 전 공사의 행보가 오히려 태 전 공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선 외교계 관계자는 “북한의 주체사상 틀을 만든 고 황장엽 씨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 대화 분위기 속에 대놓고 활동을 못 하지 않았냐”며 “태 전 공사가 이번 일을 계기로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언론 앞에 노출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태 전 공사는 국가정보원의 관리 속에 비공개 강연만 주로 참석하고, 언론 접촉도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엄포는 약간의 효과를 보는 듯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한반도 평화에 찬물을 끼얹는 ‘맥스선더 한미연합훈련‘의 즉각 중단을 청원한다’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는데, 청원자는 “한반도 평화의 봄에 찬물을 끼얹는 반북 인사 태영호를 해외추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영호는 북한체제 붕괴를 바라는 반북인사다. 북한 핵폐기의 진정성을 왜곡하는 반북인사를 왜 국회에 초청하여 모처럼 형성된 평화무드에 찬물을 끼얹는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앞선 대북 인권 전문 관계자는 “늘 북한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남남 갈등을 유도했다”며 “태영호 전 공사의 발언 등을 놓고 또 북한이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