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으로 불거진 경찰의 성차별 수사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한다는 오프라인 시위까지 열렸다. 정의당 등 정치권도 경찰의 수사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경찰은 “성차별 수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했지만, 여성계에서는 경찰의 성평등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도 뒤늦게 집중 수사 등 강도높은 처벌 의사를 드러냈지만, 남녀 갈등으로 확산된 분위기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홍대 몰카 사건은 지난 1일 누군가 회화과 전공수업에서 쉬고 있는 남성 누드모델의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포한 사건이다. 해당 사실이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지난 4일 학교로부터 수사를 의뢰받은 경찰은 당시 강의실에 있던 교수와 학생 등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홍익대 회화과의 인체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진 동료모델 안 아무개 씨가 1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마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범인은 동료 여성모델 안 아무개 씨 였다. 경찰은 안 씨가 휴대폰 2대 중 1대를 제출하지 않은 점, 피해 모델과 다툰 사실이 있던 점에 비춰 혐의가 의심된다고 보고 8일부터 10일까지 매일 안 씨를 불러 조사했다. 경찰 조사가 집중되자 안 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10일 안 씨를 긴급체포하고 11일 안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발부했다.
하지만 경찰의 신속한 대응은 오히려 편파수사 논란으로 이어졌다.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게다가 12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안 씨가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까지 연출되면서 비판은 더 거세졌다. 남성 몰카 피의자들의 모습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데, 여성 피의자라는 이유로 포토라인에 서서 일부 여성단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공공장소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몰카 사건과 달리 사진이 찍힌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특정돼 신속한 수사가 가능했다는 것이 경찰 설명. 또한 해당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 용의자가 한정되기 때문에 피의자 검거도 용이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누드크로키 수업이 진행될 경우 강의실 출입문을 통제하고 창문을 가리는 등 외부인의 접근이 제한된다.
사건을 담당한 마포경찰서 측은 “원칙대로 수사했을 뿐,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조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자가 남성이 아니었어도 이런 특수한 조건이었다면 당연히 동일한 수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긴급체포도 불가피했다고 항변한다. 안 씨의 혐의가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데다 안 씨가 범행 후 증거인멸을 시도했기 때문.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의 혐의가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고, 증거인멸 또는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은 피의자를 긴급체포할 수 있다. 안 씨의 혐의는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으로, 법정형은 최대 5년에 달하는 중대 범죄이기도 하다.
안 씨가 여러 경위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도 확인됐다. 안 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서 “휴대폰 2대 중 1대를 분실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경찰 조사가 이어지자 안 씨는 사진을 찍은 휴대폰을 한강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이어 애플 측에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도 확인됐다. 아이클라우드는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공간으로, 마포경찰서 측은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인멸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긴급체포 요건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보인 안 씨의 행동이 충분히 구속사유가 된다는 분석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명백히 드러난 것만으로도 구속사유가 되는데, 수사 초기에는 범행을 부인하다 수사망이 좁혀오니까 범행을 시인한 것은 도주 우려가 있다고까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은 식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는 제목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 청원에는 36만 명 가까이 참여했다. 정의당은 성명서를 내고 “(몰카)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수사당국의 수사방식은 너무나 미온적이었고, 처벌의지도 약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청와대도 “수사기관들이 (몰카를)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경찰의 수사 태도를 지적했다.
여성단체 등은 여성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감수성 부족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피의자 안 씨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도록 한 것은 이미 성대결로 번진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이미 편파수사 의혹이 번진 상황에서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은 여성들의 문제제기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 측은 “취재진의 관심이 쏠려 피의자 모습이 노출된 것이지 일부러 포토라인에 세운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비슷한 사건에서 남성이 피의자였을 때 포토라인에 선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인 탓에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남성이 가해자인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상대적으로 수사력을 집중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센터에 접수된 300여 건의 피해사례 중 가해자에 대한 구속수사나 압수수색이 이뤄진 적은 한 건도 없었다. 센터 관계자는 “홍대 몰카 사건에서 보여준 경찰의 태도는 그동안 몰카 피해 여성들이 수사기관에 원해왔던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여성 피해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남녀 갈등은 온라인에서 더 확산되고 있다. 여성들만 가입할 수 있는 워마드 사이트에는 남성에 대한 보복으로 ‘남성 몰카’ 사진을 올리는 수가 늘었고, 일부 남성들은 여성을 ‘김치녀’ ‘삼일한(사흘에 한 번 때려야 한다는 뜻)’ ‘예민충(예민한 여성)’ 등으로 비하하는 등 남혐, 여혐 분위기가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경찰은 뒤늦게 21일부터 공공장소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 일명 ‘몰카’를 일제 단속하고, 고강도 처벌 계획을 담은 ‘여성 상대 범죄 집중단속 100일 계획’을 발표했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피해자가 대부분 여자인 몰카 등 성 관련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이 오히려 2차 피해를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그동안 적지 않았다”며 “단순히 집중 수사를 한다고 해서, 홍대 몰카 사건에서 비롯된 남혐·여혐 갈등 분위기가 쉽사리 사그라들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김효정 언론인 hyoj03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