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공회의소 전경.
부산상공회의소 허용도 회장은 지난 3월 21일 취임식을 갖고 조성제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제23대 신임 회장에 올랐다. 부산상의는 1889년 설립된 이래 부산지역 유일의 종합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허 회장이 대표로 있는 (주)태웅은 전 세계 풍력 부품 시장의 30%를 장악한 글로벌 기업이다. 2009년에는 국내 단조업체로는 최초로 ‘3억불 수출 탑’을 받았다. 세계 일류상품 2종도 보유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약 5000억 원을 투자한 제강공장을 본격 운영하며, 소재 생산부터 단조와 가공까지를 한꺼번에 하고 있다.
허용도 회장 취임이 두 달가량 지나면서 취임 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문제들이 불거지며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먼저 허용도 회장의 동생인 허현도 대표이사가 운영하는 (주)스틸코리아가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 공장 부대시설에서 대규모 불법 임대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현도 대표는 (주)태웅의 중요 주주 가운데 하나이며, (주)스틸코리아는 매출의 50%가량을 (주)태웅과 거래하고 있다.
(주)스틸코리아는 2016년 8월 미음산단 공장부지에 연면적 5264㎡ 규모로 3층짜리 부대시설을 준공했다. 해당 시설은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에 따라 종업원의 복지 후생 증진에 필요한 기숙사, 구내식당 등 직원 복지시설로 이뤄지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상은 판이했다. 준공 1년 9개월이 지난 현재 이곳에는 물류, 전기, 자동차수입부품 등을 취급하는 5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부대시설로 볼 수 있는 것은 구내식당이 유일하다. 산집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단에서 임대 사업을 할 경우에는 산단 관리기본계획을 지켜야 한다. 스틸코리아가 임대한 사무실 등은 이 계획에 의거해 공단 내 입점이 불가능하다.
부산상의 회장 일가가 공단 조성 취지를 무시하고 불법으로 임대업을 한 게 드러나면서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입주 대상과 관계없는 업종을 임대하는 것은 입주 계약이 취소될 수 있는 엄연한 불법 행위이므로 (주)스틸코리아를 공단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주)스틸코리아의 불법 행위는 하나가 아니었다. 불법 임대업에 이어 수개월간 무허가로 고철을 대거 수집·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집법에는 미음산단에서 외부 고철을 들여와 판매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2014년 미음산단 준공 당시 관리 기본계획에도 (주)스틸코리아가 위치한 메카트로닉스단지에는 금속제조·가공업, 자동차 제조업 등 7개 업종만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주)스틸코리아는 이런 법규를 무시하고 고철을 수집·판매해왔다. 특히 허현도 대표는 외부에서 고철을 들여와 불법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공장 자체 고철”이라며 거짓 해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문제는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허용도 회장 아들이 운영하는 제강 회사인 태웅S&T도 공장 부지를 수년간 방치하며 사실상 부동산 투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단지 조성 당시 조성 원가로 분양받은 땅에 공장 착공을 차일피일 미루며 향후 부지 매각을 통해 차익을 노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태웅S&T는 2014년 12월 미음산단에 1만 8941㎡, 7566㎡ 규모의 두 필지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세특례제한법(지특법)에 따라 5억 7000만 원가량의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았다.
‘봐주기’식 행정 비난을 받고 있는 부산경제자유구역청 전경.
하지만 태웅S&T는 부지매입 3년 5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공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공사 안내판에는 지난달이 완공 시점으로 기록돼 있으나, 두 부지에는 공사현장임을 알리는 막만 처져 있다. 지특법에 따르면 3년 이내 부지를 정당한 이유 없이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감면 혜택을 받은 취득세를 다시 내야 한다.
태웅S&T는 부지에 공장을 짓기 위해 지난해 6월 착공계를 제출했지만, 시공사 내부문제로 인해 공장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단지 변명으로 여기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부동산 투기로 단정하고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강서구청은 취득세 추징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감독관청의 ‘봐주기’식 행정도 논란거리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경자청)은 지난 2월 (주)스틸코리아의 불법임대업 사실을 알고도 구두로 시정명령을 통보하는 수준에 그쳤다. 2개월가량이 지나 관련 사실이 공론화되자 부랴부랴 시정명령에 대한 공문을 발송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장 입주 계약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논란이 일자 시민단체가 비판에 나섰다. 부산경실련은 16일 성명을 통해 “경자청의 뒤늦은 대응은 결국 힘 있는 기업에 대해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면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힘없는 영세기업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대응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자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법과 규제의 적용이 느슨하거나 엄격하다면, 과연 누가 경자청을 신뢰하고 경자청의 판단에 동의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경자청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어느 기업이든 똑같은 법과 규정을 적용해 산단 내 불법행위를 근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