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자 청와대 비서실에 관료 출신이 한 명도 포함하지 않은 것이 말이나 되느냐는 말이 공직사회 일각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청와대 파견근무가 관료로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지름길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청와대 비서진에 한 사람의 관료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 못내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청와대에는 개혁적 인물로 포진하고 내각은 안정적인 인사로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인사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 참모진에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 대거 진출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다른 자리에서도 “나를 뽑아준 것은 개혁하라는 이유 때문이 아닌가”라는 말로 개혁적 인사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첫 조각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법무장관과 행정자치부 장관, 문화관광부 장관 등에 40대의 정치신인을 과감하게 등용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나이가 벼슬’이라는 풍토에서 40대 장관도 파격이지만 이들 모두가 행정경험이 없다는 것도 파격이다.
노 대통령이 이들을 기용한 것은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치철학을 잘 알고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혁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자신을 보좌하는 참모진과 주요 각료는 자신과 정치철학을 같이하는 사람 중에서 기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구도 안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천하고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손발 맞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과 철학이 다른 사람을 기용하면 상호 이질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경제부처를 제외한 각부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은 일부 언론이 지적했듯이 ‘노무현 대통령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다. 사회적 평판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철학의 동질성’에 중점을 둔 인사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인사는 지금까지의 다른 어느 정권보다도 인사권자의 정치적 컬러가 선명하게 드러난 인사다. 김영삼 대통령도 개혁을 내세웠고, 김대중 대통령도 개혁을 내걸었지만 이번처럼 인사에서부터 개혁적인 컬러를 뚜렷이 나타낸 적은 없었다.
대통령과 정치철학이 같은 인물이 청와대와 내각에 대거 진출한 것은 개혁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서나 정권초기에 나타나는 이른바 보혁(保革)간의 내부갈등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내걸었던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상당부분 내부갈등으로 개혁에 발목잡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견인차들이 ‘철학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철학적 동질성이 자칫 사회현상과 사태의 객관적 이해와 분석을 그르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더구나 그 철학이 사상으로 체계화하고 이념으로 교조화(敎條化)하면 사회현상과 사태를 오로지 이념의 잣대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념이나 사상에 지나치게 얽매이게 되면 사회현상이나 사태를 객관적·종합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이념의 좁은 구멍으로만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관견(管見)에 집착하기 십상이다.
이념이나 사상은 항상 완전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상 속에 불순물이 끼어 들거나 자신과 다른 사상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배제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철학적 동질성’이 갖는 효율성에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동질성이 갖는 함정을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