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현재 우리 경제는 성장의 동력을 잃고 있다. 내수는 건설과 소비의 거품이 꺼지면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은 유가 상승과 반도체 가격 하락 등 교역조건의 악화로 두 달째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들은 아예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중국과 동남아로 빠져나가 산업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실업률이 3.5%를 넘어섰다. 취업을 포기한 실망실업자까지 포함하면 7%에 이른다. 물가상승도 기세가 거세다. 이미 3.9%를 넘어서 서민들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더욱이 총 가계부채규모가 4백39조원에 이르고 신용불량자가 2백74만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경제의 생명선인 설비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 7.7%에 달한다.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당분간 국민들이 빚더미를 벗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증권시장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해외 투자가들의 팔자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를 낙관적으로 보고 2천8백억원어치 순매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2월 들어 경제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팔자로 돌아서 한 달 동안 무려 7천3백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에 따라 종합주가지수는 550선이 무너지면서 1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40선이 무너지면서 96년 개장 이래 최저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현재 국내 증시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35%에 이른다. 이들은 국내 정세와 경제 여건에 따라 집단적으로 행동을 한다. 따라서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국내 증시의 생사를 좌우한다. 외국 자본 유출이 대규모로 확대될 경우 증권 시장은 붕괴의 길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 자금 흐름이 마비되면서 경제는 박동을 멈출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 핵 문제와 이라크 전쟁 불안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동반붕괴 악순환을 가속화하고 있어 경제 공황의 불안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그러면 경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우선 시급한 것이 경제 불안심리의 안정이다. 경제는 구성 주체들의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 기업과 소비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일 경우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성장의 마비 현상을 가져온다. 더구나 그것이 전쟁 공포에 따른 것이라면 경제 불안이 아니라 생존 불안 차원에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견지에서 북한 핵 문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핵 개발을 놓고 북한과 미국은 초강경 대치상태다. 그러나 핵 개발 중지 대신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이라는 타협의 접점이 있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 파월 미 국무장관은 한국정부의 승인이 없이는 북한 공격을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정부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쟁이 난다면 우리가 최대의 피해자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당사자로서 북한과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국제여론을 조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와 책임자로 구성된 비상대책반을 만들어 해당 국가들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문제를 풀어가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제는 안도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임박한 이라크 전쟁에 대비해서 만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 새 정부는 경제 개혁과 운영 방안에 대한 청사진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 동북아 중심 경제 건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 시장 개혁의 시행 내용과 일정,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신산업 발전 대책 등 주요 과제에 대해서 구체적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확정하여 국민에게 불안감 대신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러나 새 정부의 정책혼선에 대해 우려가 보통 큰 것이 아니다. 청와대 정책실과 경제부처 간 역할 분담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헷갈리는 지엽적 정책만 나오고 있다. 시장 개혁은 방향조차 불분명한데 느닷없이 부당내부거래조사가 발표되었다.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겠다는 발표가 조세 형평의 후퇴 때문에 하루 만에 번복되었다.
기업과 투자가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이러한 혼란은 불안감을 확대시켜 좌초 상태의 경제를 침몰로 몰아가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새 정부의 위기의식과 긴급한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