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민 “칸이나 해운대나 비슷하지 않나”
황정민은 2년 전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칸과 처음 인연을 맺었지만 직접 영화제를 찾지는 못했다. 칸이 처음인 그는 “외형적인 모습은 칸이나 해운대나 비슷하지 않느냐”면서 “영화를 공개하는 자리는 나에게 전부 똑같은 의미”라고 했다.
‘공작’은 1990년대 ‘흑금성’이란 이름으로 실제 활동한 스파이 이야기다. 북한 핵개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에 잠입한 그는 1997년 대선 직전 남북한 사이의 모종의 계획을 접하고 신념에 변화를 맞는 인물. 황정민이 흑금성이란 인물에 끌린 데는 그의 확고한 ‘바람’도 영향을 미쳤다.
칸을 찾은 배우 황정민, 주지훈, 이성민(왼쪽부터).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이데올로기는 필요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 영화에 드러나듯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으며 속고 살았는지, 그걸 꼭 관객에 알려주고 싶었다.”
기존 첩보물과 달리 긴박한 추격전이나 액션 장면 없이 담담하게 전개되는 영화로 인해 황정민의 어깨는 더 무거웠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심리전을 밀도 있게 표현해야 했기 때문. 황정민은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두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한 편 마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자꾸 스스로를 질책하게 됐다.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과정을 보냈다. 지난해 ‘군함도’와 ‘공작’까지 마치고 난 뒤 스스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연극을 한 거다. 고전 ‘리차드3세’를 시작한 건 내 안에 뭔가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극한의 경험을 거친 지금,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 이성민 “끔직한 촬영 기억, 칸에서 위로”
배우 이성민은 칸의 상징인 뤼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을 밟은 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영화 참여와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도 “언젠가 칸 영화제에 갈 거라는 마음은 가져보지 않았다”는 그는 지금 이 경험이 “새롭다”고 했다.
“레드카펫을 걷고 극장 계단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높지 않은 그 짧은 계단이 나에겐 마치 로마시대 전쟁을 마치고 온 전사의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영화에서 그는 남한 첩보원과 접촉하는 북한 고위간부 역을 맡아 확고한 신념으로 남과 대치한다. 영화가 진한 인간미를 더할 수 있던 데는 이성민의 공이 상당하다. 그는 “‘공작’은 첩보물이라기보다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가 남북한 갈등과 북한 핵을 소재로 삼은 만큼 이성민 역시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지난해 1월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북은 극단적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분위기”라며 “우리가 ‘공작’을 시작하면서 꾸었던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 주지훈 “레드카펫의 의미 알려준 사람은 정우성”
칸 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공작’ 배우들은 줄곧 “사람” 혹은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황정민과 이성민은 물론 주지훈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에서 철저한 이념에 사로잡힌 북한군을 연기한 그는 “한 관객의 입장으로 본다면 ‘공작’에서는 진한 휴머니즘이 느껴진다”며 “체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나에게 큰 화두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면서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완성한 영화”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칸이라는 공간이 주는 묵직한 전율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레드카펫 공포증’을 털어낸 이야기도 소개했다.
주지훈은 “레드카펫은 나에게 무서운 공간이었지만 선입견을 깨준 사람이 (정)우성이 형”이라며 “영화 ‘아수라’를 찍고 함께 레드카펫을 경험하면서 모든 사람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준 형의 멋진 모습 덕에 내 인식도 바뀌었다. 꼭 칸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마음과 각오도 강하지만 사실 ‘공작’이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배경에는 최근 한반도 정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란 사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 해외 관객의 반응은 고무적이다. 영화가 상영된 2시간 20분 내내 객석에는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북핵문제는 물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이른바 ‘북풍 사건’과 같은 분단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밖에 없는 해외 관객이 과연 이야기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반응은 긍정적이다. 영화 세일즈를 담당하는 한국영화 관계자는 13일 “남북한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놀랍다, 새롭다는 반응이 많다”고 밝혔다.
‘공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4년 기획을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대선 직전, 남한의 여당 정치인과 안기부 그리고 북한 핵심세력간의 모종의 거래를 담은 실화가 바탕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은 “처음부터 흑금성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했다”며 “‘공작’이란 제목 역시 흑금성을 감추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털어놨다. 당시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정권의 ‘탄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남북한 상황은 급변했다. 이런 분위기가 ‘공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칸(프랑스)=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칸 필름마켓에서 ‘믿고 사는 배우’로 통하는 마동석과 송강호…‘성난황소’ ‘마약왕’ 뜨거운 관심 한국이나 프랑스 칸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인정받는 연기자들이 칸 국제영화제 기간 열리는 칸 필름마켓에서도 ‘믿고 사는 배우’로 통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계에서도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기간 열리는 칸 필름마켓에서는 올해도 여러 한국영화가 해외 바이어에 소개되고 있다. 마켓에 나온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화제작은 역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다. 작품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와 중국, 싱가포르 등 8개국에 팔렸고 추가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버닝’이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갖는 프리미엄이 상당하지만 이를 제외하고 칸 필름마켓에서 눈에 띄는 배우는 국내서도 티켓파워를 과시하는 스타들이다. 특히 마동석과 송강호가 단연 주목받는다. 칸 필름마켓의 영화 ‘마약왕’ 부스 마동석은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사용해온 영어이름 ‘동 리’로 해외에 조금씩 알려졌지만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이제는 모든 곳에서 본명인 마동석으로 불린다. 인기 상승의 결정적인 배경은 2년 전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부산행’의 효과다. 마동석 주연의 새 영화 ‘성난황소’를 마켓에 내놓은 투자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마동석을 향한 관심이 상당히 뜨겁다”며 “한국에서처럼 마동석이 가진 특유의 매력을 좋아하는 반응이 이곳 칸을 찾은 바이어 사이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여름 개봉 예정인 ‘신과함께 : 인과연’의 대표 얼굴로 하정우, 주지훈 등이 아닌 마동석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흥행작의 후속편이란 사실과 더불어 마동석이 주연으로 나선 점에서 바이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송강호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올해 첫 주연작인 ‘마약왕’은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다. 2007년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밀양’과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로 칸 국제영화제를 경험해 인지도를 쌓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국내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과 흥행성과를 보이면서 해외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점도 그가 필름마켓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실제로 ‘마약왕’은 지난해 1000만 관객영화 ‘택시운전사’의 송강호가 참여한 작품이란 사실에서 더 관심을 모은다.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