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뜻하지 않은 9·11테러사건으로 수많은 미국인이 죽고 피의 복수극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희생되고 애꿎은 이라크는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고 정체불명의 사스(SARS)라는 괴질은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실로 재앙의 연속이다. 한시바삐 머피의 먹구름이 걷혀서 전쟁이 끝나고 각국을 도는 괴질도 멈추어 더 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세계 각국이 고대하고 있다.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경제에도 머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3대 고통을 겪고 있다.
첫 번째 고통은 고용불안이다. 경기침체의 심화로 인해 20대와 50대는 일자리 구하기가 거의 어렵다. 30대, 40대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다.
두 번째 고통은 가계부채다. 총 가계부채 규모가 4백50조원이 넘는다. 국민 일인당 1천만원이나 되는 돈이다. 이 가운데 이미 신용불량자가 3백만 명에 육박한다.
세 번째 고통은 물가불안이다. 지난달만해도 3%대에 머물던 물가가 4.5%에 달한다. 실업, 빚, 물가 3중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고통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 3대 악운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악운은 모래폭풍으로 경제의 앞을 막는 이라크전쟁이다.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상승하여 물가가 불안한 것은 물론 수출을 위축시켜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두 번째 악운은 괴질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공장의 잠정 폐쇄, 사업 중단, 직원철수, 여행과 방문금지 등 경제활동이 부분적으로 마비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대외진출과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다. 향후 괴질이 직접 상륙한다면 그 불안과 피해는 더욱 클 것이다.
세 번째 악운은 북한 핵문제이다.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경우 소비와 투자심리는 얼어붙는다. 또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외국자본의 유출이 본격화된다. 이 경우 금융시장이 붕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미국의 공격이라도 시작된다면 그때 우리 경제는 상상할 수 없는 혼돈상태에 빠진다.
현재 우리 경제는 내면적으로 부실이 심각한 상태이다. 전체 기업들 중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들이 3분의 1이 넘는다. 또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 이후 금융시장은 신뢰를 상실했다. 신용불량의 급증으로 인해 가계와 카드사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소득격차가 크고 노사불안이 심각하다. 이런 상태에서 악운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 실업 폭증, 물가 폭등, 사회 불안 등으로 비상사태가 올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제를 놓고 정부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개혁의 속도 조절, 수도권 공장건설 허용, 환경규제 완화 등 편법적인 기업달래기와 골프장 건설 확대 허용, 농가주택 구입 시 양도세 면제 등 부유층의 소비 촉진을 주요 경제대책으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임기응변적 땜질 처방으로 경제위기를 모면하고자 할 경우 우리 경제는 더욱 큰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우선 필요한 것이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효과적 대비, 한미간 건설적 협조관계 복원,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등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기업과 국민이 안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 기업을 죽이는 개혁이 아니라 살리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분식회계의 근절, 투명성 제고, 지배구조 개선 등 우리 경제의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기업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해외자본의 유출을 막고 투자분위기를 고취시켜야 한다. 여기서 정부는 규제혁파, 노사개혁, 금융개혁, 공공개혁 등 필요한 개혁을 올바르게 추진하고 기업인의 사회인식을 높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바꿔야 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동북아 중심 경제국가 건설을 위한 사업들의 청사진을 한시 바삐 만들어 미국이 대공황 때 사용한 뉴딜정책처럼 경제의 동력을 되찾는 구심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머피의 법칙은 준비 안된 사람에게 닥치는 불행의 속성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 새 힘을 불어 넣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거국적인 국가 발전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불운을 이겨내고 강국으로 우뚝 서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