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공사가 최근 출간한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김정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높였다. ‘수령님,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이 지구를 깨버리겠습니다.’ 그제서야 김일성은 책상을 탁 치면서 ‘내가 듣고 싶었던 답변이 바로 그것이다‘라며…” (1991년 한반도비핵화 협상 당시)
태 전 공사는 저서에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추호에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내부적으로는 강경한 핵 필요성 의지를 다지면서,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 핵사찰을 받겠다고 밝혔다는 것. 그러면서 91년 당시 이미 10~14k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음에도, 90g의 플루토늄만 보유하고 있다고 거짓된 내용의 보고서를 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했다는 게 태 전 공사 주장이다.
그는 현재 북한의 이번 핵 포기 발언도 실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태 전 공사는 저서에서 ‘1991년 비핵화 선언 협상 당시 가장 큰 난점은 사찰 대상 선정 문제였다. (중략) 외무성은 사찰 대상 선정 권한을 한국에 주면 결국 마지막에는 정치범수용소까지 보자고 할 수 있다며 사찰 대상 선택 권한을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근거를 들었다. 현재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역시 북한 정치부 수용소와 김씨 가문만 사용 가능한 특수지역이 수없이 많은 김정은 정권에게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제안일 것이라고 태 전 공사는 주장했다.
#북 경제개발?…군부대 있어 ‘사실상 불가능’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에 대한 경제 개발 시발점이 될 철도 건설부터가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남한과 러시아가 강력히 원한다고 해도, 북한 군부가 원치 않는다는 것. 그는 그 근거로 북한의 군부대를 제시한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중략)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 동안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중략)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산재한 부대 이전 비용까지 부담하면 된다. (141~142페이지 중)
#“쏴” 한 마디에 자행되는 처형…인권 문제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 더 공포 정치가 강화됐다는 게 태영호 전 공사의 판단이다.
‘장수길과 리용하(장성택 측근들)를 총살하던 날, 북한 고위급은 아연 실색했다. 이날 당과 군부의 중간 간부들은 평양 교외 강건군관학교 사격훈련장에 모였다. 고위급을 총살하는 처형장이었다. 간부들은 대단히 놀랐다. 사격장에는 평소 총살할 때 사용하던 자동보총(소총) AK-47 대신 처음 보는 4신 고사기관총 8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면에는 흰 천이 둘러져 있었고 그 뒤에 누군가가 있는 듯 보였다. (중략) 흰 천이 벗겨졌다. 장수길과 리용하가 말뚝에 묶여 있었다. 8정의 4신 고사기관총이 두 명을 향해 불을 뿜었고 고위 간부들은 얼이 나갔다.’ (331~332페이지 중)
그는 장성택 처형 당시 1만여 명이 숙청됐다며, 북한은 ‘김정은 쏴 명령 한 마디에 바로 총살이 이뤄진다’고 폭로했다. 김정은은 대규모 건설사업이나 국가적인 기념사업을 벌이며 사업 개시 단계에서 꼭 한두 명씩 처형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2012년 금수산기념광장 리모델링 때 벌레를 박멸하기 위해 3m 흙을 파낸 뒤, 그 흙을 구워 다시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작업 기한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국가산업미술지도부에서 1.5m만 파고 흙을 덮었다가 발각됐고 국장 한 명이 총살됐다’고 덧붙였다.
태영호 전 공사가 국회 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독재 체재? “노예 나라”
‘노예사회의 특성은 김정은 대에 와서 더욱 심화되었다. 김정일과는 달리 형식적인 절차도 없이 일사천리로 후계자가 된 김정은은 아버지보다 더 잔인한 노예주로 군림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사람을 죽이고 개인적으로 밉다고 고모부를 처형했다. (중략) 노예 상태인 북한 주민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533~534페이지)
태영호 전 공사는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노예 상태인 북한 주민들에 대한 해방 혁명이라고 진단한다. 북한 주민에게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권리를 되찾아주는 게 통일이라는 것. 그는 김정은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 문화 콘텐츠를 제시한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이미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것. ‘자기야’, ‘오빠’ 같은 한국식 표현이 너무 많이 돌고 있다며 ‘내가 아는 북한 주민 중에 한국 콘텐츠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단언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게 된다고도 덧붙인다.
그는 통일을 간절히 소원한다. 원래 책을 3월 초 내려고 했으나, 급격한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고 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 같아 책 출간을 미뤘다는 게 그의 설명. 그러면서도 북한 김정은 일가가 제시하는 평화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머릿말에서 ’악마가 아닌 사람을 악마로 묘사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악마를 천사로 묘사하는 것도 역시 잘못됐다‘고 우려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t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