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불문율이 깨졌다.” “성역이 뚫렸다.”
감사원이 대검찰청 감사를 준비 중이라는 것에 대해 일선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사원으로부터 직접 감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검사는 “일반 국민들에겐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검찰로서는 난감하고 수치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검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검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 같다”고 전했다.
대검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긴 하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여기엔 두 기관의 공공연하고 암묵적인 관행이 작용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감사원 전직 고위 인사는 “(대검에 대한 감사는) 감사원으로서도 부담스럽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굳이 검찰과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했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도 “(감사를 면해주는) 대신 검찰 쪽에도 감사원에 대해선 좀 살살 하자는 기류가 흘렀던 것은 분명하다”고 귀띔했다.
감사원은 6월 중순경부터 약 보름간 20여 명의 직원을 투입해 대검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미 5월 초 대검 측에 감사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 관계자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3월에 대검 감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에 따라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다. 감사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뒤를 따르자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그러나 감사를 받게 된 대검 내부는 뒤숭숭하다. 정치권에서도 감사에 착수한 배경 등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번 감사에 여권 핵심부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추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원 시절 “대검이 왜 한 번도 감사를 받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대검 감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꼽은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견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됐을 뿐 아니라 폐쇄적인 문화가 개선될 수 없었다. 최고 엘리트 검사들만 모인다는 대검찰청에 대한 감사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검찰도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동시에 검찰 조직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과 사정당국 안팎에선 문무일 총장을 포함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만도 감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정권 출범 때부터 시작된 적폐청산 수사, 검·경 수사권 조정, 몇몇 사건 처리 등을 둘러싼 여권 핵심부의 부정적 인식들이 쌓여 대검 감사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수사권 조정 등 중요한 사안을 논의할 때 문 총장을 통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문무일 패싱’은 그동안 여러 번 제기된 바 있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문 총장이 눈치껏 그만두기를 바라는 기류가 분명히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제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데 문 총장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우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재인 정부의 호흡이 잘 맞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거리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검 관계자는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켜 적폐청산을 완성한 게 누구냐. 검찰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문 총장인데 왜 이제 와서 흔드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문 총장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검찰 내 여러 성추행 사건 및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 담당자들의 반발이 잇달아 나왔다. 개별 수사를 놓고 일선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향해 외압 등을 주장하는 것은 ‘항명’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충격파가 남다르다. 특히 채용비리 사건의 경우 수사단을 이끌었던 검사장이 직접 문 총장을 겨냥했다. 현직 검사장이 검찰총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서초동 주변에선 ‘검란’으로까지 불린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문 총장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검찰 내 일련의 상황들을 앞서 대검찰청 감사와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과연 힘 있는 검찰총장이었다면 조직 내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을까’라는 게 핵심이다. 이와 관련, 야권 일각에서는 수사 외압을 주장한 검사 측과 청와대 인사 간 커넥션 의혹까지 나왔다. 문 총장 저격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것인데, 이름이 거론된 청와대 행정관은 강하게 부인했다. 어찌됐건 검찰 수장 입장에선 리더십 흠집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 말이다.
“청와대가 문 총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 총장을 들이받더라도 부담이 덜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가장 민감한 수사를 담당하는 곳이 서울중앙지검이고, 거기서도 불만이 많지만 전혀 새어나오고 있지 않다. 이는 윤석열 지검장의 경우 이번 정권에서 승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여권이 윤 지검장을 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검사가 있겠느냐. 검찰 특유의 정치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