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6년 7월 검찰은 엘시티 사업 전반을 겨냥한 수사에 착수했다. 전국 최대 규모와 최고 분양가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던 엘시티였기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검찰은 엘시티 시행사, 분양대행업체, 설계업체를 시작으로 부산시청과 부산은행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업의 인허가 과정에서부터 이영복 씨의 로비 혐의 등이 수사 대상이었다. 이 씨는 잠적 끝에 체포됐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 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부실 수사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수사의 핵심 포인트로 꼽혔던 인허가 문제, 포스코건설의 시공사 참여 과정, 이 씨의 실체적인 배후 등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배 중이던 이 씨를 당시 정권 실세들이 비호하며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일요신문’은 비선실세이던 최순실 씨가 엘시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 사정기관 최고위급 인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1278호 ‘최순실, 엘시티 비자금 수사 무마 정황 포착’ 기사 참고).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엘시티 사업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때의 수사에서 밝히지 못한 의혹, 그리고 누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한 친문 의원은 “대선 캠프 때부터 엘시티에 대한 문제 인식이 퍼져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개도 아닌데 수사가 흐지부지됐다고 했다”면서 “이영복과 지역 정치인들 몇 명 잡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선봉은 국세청이 맡았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4월 말부터 엘시티 시행사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 중이다. 국세청 최정예조직으로 꼽히는 서울청 4국은 구체적인 탈세나 비자금 조성 혐의가 의심될 때 움직이는 곳으로 대형 게이트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사 4국은 올해 2월 엘시티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 안팎에선 엘시티와 포스코건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이 발견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와는 별개로 검찰도 엘시티와 관련해 새로운 첩보들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지지부진하던 엘시티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된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동원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예전 수사에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수집 중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놓고 봤을 때 대형 게이트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 말 현 정권 사정 라인에선 박근혜 정부 당시 이뤄진 수사 전반을 살펴보고 문제점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한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검찰이 과연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전면적인 재조사에 대한 공감대가 모아졌었다”라고 귀띔했다. 그 후 국세청과 검찰이 엘시티를 겨누고 나선 것이다. 이는 국세청과 검찰 등 사정기관들의 동시다발적 출격에 여권 실세들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짐작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검찰을 비롯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엘시티 측에서 만들어진 돈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정황들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서다. 특히 이들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몇몇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냈다고 털어놨다. ‘일요신문’이 그 명단을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었다.
앞서의 사정당국 고위 인사도 “이름이 거론된 의원들이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명의의 후원금을 받은 것은 확인이 됐다”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목적으로 후원금을 냈는지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엘시티 측 전직 관계자도 “지금 이영복 씨가 재판을 받고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씨 최측근 인사로부터 의원들 후원금을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흥미로운 점은 엘시티와 관련 있는 한 대기업의 임원들이 후원금 명단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름만 빌려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어찌됐건 엘시티와 이 대기업 간 커넥션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이 대기업의 전직 핵심 관계자는 올해 검찰 측 인사를 만나 이에 대한 제보를 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도 “새누리당 의원들 후원금 명단을 살펴보면 우리 쪽 임원들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차명으로 후원된 내역도 있다. 엘시티 돈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쪽이라는 얘기가 내부에서 파다했다. 정식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