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계 최고 스타 ‘페이커’ 이상혁. 사진=SK 텔레콤 T1 프로게임단 페이스북
#‘골든 로드’ 열린 e스포츠
e스포츠의 스포츠 경기대회 진입은 ‘꿈’ 같은 일로 여겨졌다. 종목 선정, 저작권, 대중들의 인식 등 많은 장애물들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지난해 4월 중국의 알리스포츠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e스포츠의 국제 스포츠 경기대회 합류 가능성은 급물살을 탔다. 올해 아시안게임 개막을 약 4개월 앞두고는 e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차기 대회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종목 채택이 유력하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e스포츠의 아시안게임 진출에 뜨거운 반응이 뒤따랐다. 특히 e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아시안게임’을 검색하면 e스포츠 연관검색어만이 뒤를 따를 정도다. 특히 국내외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에 대한 관심이 컸다. LOL은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프로에볼루션사커(위닝일레븐), 아레나오브발러(펜타스톰), 클래시로얄과 함께 아시안게임 세부 종목으로 선정됐다.
자연스레 국내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e스포츠의 태동을 함께한 대한민국은 이후로도 오랜 기간 e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아왔다. 총상금 약 500만 달러(약 54억 원) 규모의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대한민국은 5년 연속 우승팀을 배출했다. 지난 3년간은 국내 팀들 간의 결승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민속놀이’라 불리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종목의 강력함은 말할 것도 없다. 팬들은 국내 게이머들이 아시안게임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상상했다.
e스포츠 대회 현장. 사진=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가 넘어야 할 산
하지만 팬들의 기대는 이내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e스포츠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 나설 수 없다는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비공식 연봉 30억+α로 알려진 ‘페이커’ 이상혁도, 지난 4월 스타크래프트2 국가 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문승원, 어윤수, 이신형 등도 아시안게임에 참가조차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e스포츠의 비극이 벌어진 계기는 일종의 행정 절차상 문제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 나서려면 대한체육회를 통해 국가대표로 선발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e스포츠협회는 현재 대한체육회 회원 지위를 상실한 상태다. 국가대표팀이 구성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에 대한체육회 품안에 안겨 있던 e스포츠는 지난 2016년 3월 ‘결격단체’라는 낙인이 찍혔다. 엘리트 스포츠-생활체육 통합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의 개편작업도 이어졌다. 체육회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당시 ‘시·도 체육회에 가입한 시·도지회가 9개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던 e스포츠협회는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대한체육회의 ‘비회원’이 됐다. 이에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할 수 없게 됐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고 세부종목이 결정되는 동안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개막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는 어떨까. e스포츠협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시안게임에 선수들을 파견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협회는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참가 여부가 걸린 현재 상황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협회의 의지는 확고했다. 각 종목별 대표팀 선발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협회 지회의 시·도 체육회 가입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대한체육회는 가입 요건을 ‘시·도 체육회 가입 지회 1개’로 완화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는 6월이면 8월 본선에 나설 팀을 뽑는 지역 예선전이 치러진다. 협회 관계자도 “5월 말에는 엔트리를 제출해야 한다”며 애타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시·도 체육회 가입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몇몇 시·도 체육회의 규정을 잠깐만 살펴봐도 가입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서울특별시체육회의 경우 ‘3개 이상의 구종목단체가 해당 구체육회에 가입되어 있을 것’이라는 대한체육회와 유사한 규정이 존재한다. 또 다른 하위 단체 구성이 가입 선결 조건인 것이다. 협회가 자리를 잡은 서울시 마포구의 체육회 규정에는 ‘서울시 체육회의 규정을 준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애매한 규정이 단체의 신규 가입을 가로막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체육회로 눈을 돌려봐도 유사한 어려움이 있다. 경기도체육회 ‘인정단체 가입요건’에는 ‘10개 이상의 시·군종목단체가 해당 시군체육회에 가입돼 조직돼 있을 것’이라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넥슨, NC 등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 성남의 체육회 가입 규정을 살펴보면 ‘경기도종목단체에 회원으로 가입을 한 후 본회에 회원 가입을 신청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가입을 희망하는 단체로서는 혼란에 빠지기 쉽다.
각종 e스포츠 행사가 자주 개최되는 고양시의 경우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 ‘4개 이상의 동호회나 클럽’ 정도가 선결 조건이다. 하지만 e스포츠는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아직까지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인식과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가 존재한다. 지역 체육인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불과 직전 정권에서 게임은 일부 인사들로부터 ‘4대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선수단 선발이 확정될 경우 당사자가 될 수 있는 프로게임단도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한 프로게임단 관계자는 “e스포츠협회와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얽혀 있는 사안이다. 게임단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기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이번 일이 잘 해결돼서 선수들이 대회에 나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e스포츠의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 채택은 세계 최고 실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선수들의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놀이’로 치부되던 게임을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켰다. 여전히 좋은 기량과 저변으로 현재까지도 종주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국의 ‘자본 공세’에 e스포츠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