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기가 막힌 것은 김 의원의 이 같은 혐의가 누군가의 고발이나 측근의 폭로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양심고백을 통해 밝혀졌다는 점이다. 양심에 부끄러워 스스로 고백한 것이 결과적으로 자승자박(自繩自縛)으로 되돌아오게 된 셈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3월 기지회견을 통해 법을 곧이 곧대로 지키고는 정치를 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며 자신의 ‘범법’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 양심고백이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된 것이다.
다 알다시피 김 의원은 지난 2000년에 국회의원선거와 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했고 양심선언을 했던 지난해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세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그는 후원금 한도를 초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실을 고백한 것이 결국 법정에 서야하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양심고백’으로 법정에 선 김 의원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때로는 감추어 두어야 할 진실도 있다’는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씹어보게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치인이 그랬던 것처럼 김 의원도 끝까지 자신의 ‘범법’을 숨기고 발설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법정 후원금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정치인들이 마치 지뢰밭을 통과하듯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도 너나없이 떳떳지 못한 자금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한 선거법 아래 치러진 선거였다. 그러나 그때도 운좋은 대부분의 선량(選良)들은 선거법을 어기고도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당시 어느 국회의원이 지나치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중에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당선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일갈하자 그 자리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모두 쓴웃음만 지을 뿐 묵묵부답이었다는 뒷얘기도 있었다. 선거법이 너무 엄격하다보니 국회의원들 사이에 ‘걸면 걸린다’는 얘기가 떠돌던 것도 그때였다.
이 자리에서 김근태 의원의 범법사실을 옹호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국회의원이라도 법을 어겼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을 어기고도 그런 일이 없다는 듯 백주에 활보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한 판에 자신의 불법을 스스로 고백한 정치인만 처벌받는다면 우리는 결국 진실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정치개혁을 외치는데도 우리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항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법이 현실정치에서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킬 수도 없고 지키게 할 수도 없는 법을 남발한 것이 ‘법정에 선 양심선언’에 대한 동정론을 낳기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