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남북정상회담 직후까지만 해도 대다수 은행은 준비태세를 부인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되자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국내 인프라 금융사업 경험이 풍부한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이 특히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경협과 관련, 은행 중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남북경협 기대감이 일기 시작할 무렵부터 “과거 대북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만큼 협력 단계에 따라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우리은행은 2004년부터 개성공단이 폐쇄된 2016년 2월까지 개성공단지점을 운영한 바 있다. 우리은행은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에도 서울 중구 명동 본점 지하에 개성공단지점 임시영업소를 운영해왔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은행은 각 부서에서 다양한 금융서비스 지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에는 ‘남북 금융 협력 태스크포스팀(TF)’을 신설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개성공단 재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시 조기 정상화를 위한 특별금융지원 등도 검토 중이다.
지난 1년간 국내에서 6건의 인프라 사업을 진행한 KB국민은행은 북한의 철도·항만·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인프라 금융 참여를 검토 중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따로 TF가 신설되지는 않았으나 인프라 관련 금융사업을 검토 중”이라며 “더불어 인도적 차원의 사회공헌활동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도 인프라 금융사업의 경험을 살려 북한 인프라 구축 사업에 금융주선 및 금융 주관사로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북한지점’을 운영한 바 있는 NH농협은행, KEB하나은행은 각각 금강산지점 재개설과 북한 진출 계획을 추진한다. NH농협은행은 2006~2009년 금강산관광특구 내 금강산지점을 운영한 바 있다. KEB하나은행은 옛 외환은행 시절인 1997년 북한 금호지구에 금호출장소를 운영하며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에 진출한 바 있으나 2006년 철수했다.
국책은행은 더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일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한 기자회견에서 “남북경협 관련해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한은이 북한경제실을 중심으로 북한 연구는 적지 않게 해왔다. 통일 관련해서도 다양한 시나리오별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등 연구를 많이 진행해왔다”며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는 것이 암시했다. 한은은 경제연구원에 북한경제 분야 박사급 연구 인력을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DB산업은행은 KDB미래전략연구소 통일사업부를 중심으로 북한 금융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1일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다음 역점사업은 남북경협”이라고 강조했다. 산은은 남북경협 시 한국전력공사 지분 32.9%를 보유한 대주주로서 수혜도 예상된다.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면 폐쇄 전까지 전력을 공급해온 한전이 다시 전력 공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다. 수은은 지난 17일 ‘제8차 남북협력자문위원회’를 열고 6월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에 대비, 역할을 재점검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남북경협 재개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지원제도를 사전에 보완하는 등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IBK기업은행은 이달 중 조직개편을 통해 ‘IBK남북경협지원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위원회는 기업은행의 개성공단 지점 설치를 포함해 대북 금융 진출 방안이나 SOC 인프라 구축 시 파이낸싱 참여 등을 관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위원회는 행 내 그룹장들이 모여 안건을 논의하는 협의체 역할을 한다”며 “내부적으로 기업고객, 여신운영, 경영전략그룹 등 그룹장과 실무자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금융권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현대아산이 2000년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의 협의를 통해 금강산지역에서 신용카드 서비스를 지원한 만큼 카드업계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북한 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 당시 해당 사업에는 BC카드와 국민카드, 외환카드 총 3곳이 참여한 바 있다.
여신금융협회가 2016년 7월 발표한 보고서 ‘북한의 카드시스템 현황 및 향후 활용방안’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 중반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신용카드 결제를 허용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사금융 시장의 자금흡수와 원활한 자금유통을 위해 현금카드 보급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부정부패 척결과 원활한 자금유통을 위해 전자결제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전자지급결제수단 사용을 장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정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남북통일 이후 북한 내 소비증대와 금융시장 개선을 위해 북한 주민에게 직불카드 형태의 전자적 결제수단 보급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카드업계는 다만 은행들처럼 가시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과거 대북사업을 진행한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은행권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카드업계에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2금융은 제1금융에 맞춰 따라가며 서비스가 강화되는 개념이므로 제1금융의 진출과 사업 여부에 따라 이후 구체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보험업계도 남북경협에서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경협을 앞두고 경협보험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있을 일에 나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남북경협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수출입은행 등은 개성공단 이외 지역에 진출한 기업의 보험 가입을 장려하는 등 지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