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의원이 ‘드루킹’의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드루킹은 지난 3월 네이버 댓글조작을 이유로 구속됐다. 드루킹 수사가 진행되면서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댓글팀을 조직적으로 운영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정황 증거가 제기됐다. 또한 친문 실세로 통하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관련성도 나오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등 메신저에서 김 의원과 드루킹이 연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드루킹과 김 의원의 주장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렸다. 드루킹은 김 의원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이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메신저인 시그널, 텔레그램에서 기사 링크 등을 보내거나 이야기를 나눈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드루킹 측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인사청탁했고 이를 김 의원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게 사실도 밝혀졌다.
반면 김 의원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며 텔레그램 등 메신저로 연락 오는 사람이 많았고 이를 일일이 관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드루킹이 김 의원에게 무리한 인사 청탁을 했고 이를 무시하자 매크로를 사용해 정부에 악의적 댓글을 달았다고 해명했다.
이번 옥중 편지에서 드루킹은 김 의원이 직접 드루킹이 운영하던 느릅나무 출판사로 와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봤고 묵인이나 사실상의 지시를 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 의원이 ‘자신처럼 생각하라’며 허 아무개 전 보좌관을 소개시켜줬고, 그가 ‘삥 뜯기’ 하듯 500만 원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누선물을 하자 집에 들어가서 포장을 다 찢어본 뒤 돈이 아니라고 전화를 세 번이나 걸어서 비누를 건네준 회원에게 욕을 했다’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드루킹은 편지 말미에 ‘댓글을 작성, 추천하고 또 매크로를 써서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반성합니다. 그러나 10년의 어둠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서 민주정권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면서도 ‘더불어 이 사건의 최종지시자·보고받은 자이며 책임자인 김경수 의원도 우리와 함께 법정에 서서 죗값을 치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라고 적었다.
김 의원과 민주당 측은 즉각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 측은 “정치브로커의 ‘황당소설’에 속을 국민은 없다. 한마디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소설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며 “드루킹 옥중편지는 검찰이 자신에 대한 수사 축소와 빠른 석방을 보장하면 김 후보의 댓글 지시에 대해 진술하겠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작성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18일 오전 간담회를 통해 지난 14일 드루킹과 수사·공판담당 검사와의 면담에서 드루킹의 제안을 공개했다. 드루킹은 경찰의 댓글 수사를 축소하고 범죄 혐의를 받는 경공모(경제공진화모임) 회원들을 선처하고 자신을 빠르게 석방시켜 주면 김 의원을 잡을 수 있는 ‘폭탄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경찰 조사에서 폭탄 진술을 하거나 조선일보에 사실을 까버리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드루킹 편지로 난리가 났지만 생각보다 민주당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경수 의원 평소 행실이 워낙 좋아 이번 사건을 믿는 사람이 없다. 믿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도 하지 않는다. 아마 김경수 의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드루킹 말처럼 김 의원이 배후에서 조종할 캐릭터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구속된 이후 애꿎은 김경수 의원을 죽이려는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드루킹이 쓴 편지가 매우 구체적이고 김 의원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드루킹 편지를 대부분 사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럴 사람이라서 죄를 짓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누가 그럴 줄 알았냐”며 “드루킹 같은 스타일은 녹취록이나 증거를 마지막 카드로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런 게 공개된다면 폭발력이 엄청날 것이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편지를 두고 감형 받으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형사사건 전문 한 변호사는 “드루킹이 편지를 보내고 공개한 이유는 변호사로서 할 만한 조언이라고 본다. 자신이 주범이 아니고 시켜서 했다는 것을 입증하거나 정황이 있다면 형이 크게 감경된다”며 “더군다나 수사 과정에서 권력기관의 개입이 있었다면 판결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옥중편지 이후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야당은 공세 수위를 더 높여가고 있다. 18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경수가 갈 곳은 경남도청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이 사건 초기 나의 지적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 “민주당도 결국 감옥에 갈 후보는 이제 사퇴시키고 다른 후보를 찾아야겠다”고 주장했다.
다시 공은 국회로 돌아왔다. 국회는 18일을 시한으로 드루킹 특검과 일자리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합의했다. 하지만 옥중 탄원서가 공개되면서 두 안건 처리 모두 불투명해졌다. 한국당은 특검법에 김 의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드루킹 개인 차원으로 선을 긋고 있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선거에 영향이 갈 수 있는 만큼 두 당 모두 한발짝도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문제가 커지려면 김 의원이 정치 조직을 만들어 사주하거나 정당 차원으로 배후에서 자금지원을 하는 등 최소 2가지 전제 중에 하나는 충족되어야 하는데 드러난 정황이 없다. 내용을 보면 진위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법원 판단 전에는 공방일 뿐, 선거에도 큰 영향이 없어 보인다”면서 “특히 보수매체인 ‘조선일보’에 편지를 공개하면서 오히려 판이 줄어든 면이 있다.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정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