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커미셔너가 된 이후 더 이상 야구를 팬심으로 지켜볼 수 없게 됐다. 야구를 보는 시각에 어떤 변화를 이뤘는지 궁금하다.
“팬으로 야구 경기에만 집중했을 때가 훨씬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은 경기보다 쏟아지는 현안들을 챙기고 해결하느라 정작 야구를 즐기지 못한다. 총재 취임 전에는 동반성장연구소 일을 겸하면서 총재직을 수행하려 했는데 지금은 연구소보다는 매일 야구회관으로 출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정말 많은 야구인들을 만난다고 들었다. 총재로선 처음으로 해외 전지훈련지를 찾기도 했다.
“지난 2월 13일부터 3월 초까지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의 전지훈련지를 돌며 감독,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과 직접 인사를 나눴다. 최근에는 역대 사무총장과 일구회, 백구회 야구인들을 만나 원로들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역대 심판위원장들과의 만남도 약속돼 있다. 일련의 행보는 야구인들과 소통하면서 야구를 좀 더 많이 배우는 과정이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KBO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때도 있다.”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야구회관에서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총재 취임 후 ‘깨끗한 야구, 돈 버는 야구, 즐거운 야구’라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당연한 명제지만 현실에선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취임식에서 언급했던 여러 내용을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클린 베이스볼, 프로야구의 산업화, 그리고 힐링’이다. 이게 ‘깨끗한 야구, 돈 버는 야구, 즐거운 야구’와 맞닿아 있다. 물론 이 모든 걸 이뤄내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3년의 임기 동안 결과물에 집착하기보단 베이스를 만들어 놓는 데 더 집중할 것이다. 총재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일들이다. 모두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야구인들을 만나고 있다.”
정 총재는 “KBO 일이 이렇게 많을지 정말 몰랐다”면서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일주일에 5일을 출근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KBO 직원이 40여 명인데 지금의 인력으로는 가중되는 업무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원래 두산 베어스 팬이었던 그는 취임 당시 ‘탈(脫) 두산, 출(出) 두산’을 외쳤다.
―올 시즌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클린 베이스볼’을 강조했다. 경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통해 클린 베이스볼을 시행하고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심판 판정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다.
“클린 베이스볼을 이루려면 심판의 권위를 회복시켜주는 게 중요하다. 심판 판정 불복 현상은 선수들 스스로 야구에 대한 룰을 어기는 것이다. 최근 오재원이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삼진을 당한 후 더그아웃으로 향하다 다시 돌아와 ‘볼이 높지 않냐’고 묻는 건 심판 판정에 불복하는 행위다. KBO 공식 야구규칙에 따르면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 관련 선수들의 이의 제기가 금지돼 있다. 당시 주심이 오재원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는데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결정이었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기 전에 선수들도 심판에 대해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일부 선수들은 심판한테 감정 표현을 다한다. 앞으로 그런 행동은 페널티 대상이 될 것이다.”
야구 규칙을 살펴보면 9조 2항에 ‘타구가 페어냐 파울이냐, 투구가 스트라이크이냐 볼이냐, 또는 주자가 아웃이냐 세이프이냐 하는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의 것이다. 선수, 감독, 코치 또는 교체 선수는 그 재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양의지가 투수 교체 후 연습 투구에서 공을 잡지 않고 피한 행동을 두고 벌금 300만 원과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징계를 받았다. KBO 징계를 두고 심증만 갖고 너무 무거운 징계를 내린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양의지가 고의로 공을 받지 않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공이 주심한테 곧장 향했다면 부상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선수는 공이 빠진 거라고 말하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공이 빠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 징계보다 더 무거운 징계가 내려졌어야 한다. 상벌위원회가 독립기구라 내가 관여할 수는 없지만 심판 판정 불복 현상을 다스리려면 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심판들을 만났을 때 다른 건 몰라도 볼 판정만큼은 동일한 룰을 적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전체 경기는 몰라도 한 경기 내에선 일관성 있는 판정이 중요하다. 나도 두산 팬이었던 시절에는 심판 판정을 신뢰하지 못할 때가 있었지만 현장에서 심판이 보는 시각과 팬의 입장에서 보는 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일부러 오심을 저지르는 심판은 없다. 한 팀에게 편향된 판정을 내리는 심판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심판의 볼 판정에 타자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투수도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다 각자의 입장에선 보는 시각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만약 패배의 이유가 오심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선수도, 팬들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억울한 사례를 만들지 않는 게 KBO 존재의 목적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한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KBO도, 심판위원회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 총재는 심판들도 오심을 줄이기 위해 사무국, 심판위원회가 교육, 세미나를 통해 보완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종료 후 투구추적시스템을 활용한 자료를 주심에게 제공하고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등 공정한 판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통합 마케팅으로 돈 버는 야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건가.
“올 시즌 세 차례의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들에게 여러 차례 통합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몰 마켓을 구성하는 팀들은 찬성하는 분위기였고 점차 빅 마켓 구단들도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중이다. 나름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유니폼을 제작 판매하는 것과 각 팀마다 개별 회사를 선정해서 자체 제작하는 것과 비용면에서 어느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나.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당 생산 비율이 줄어든다. 빅 마켓은 기존의 수익을 유지하게 만들고 스몰 마켓은 좀 더 규모를 키울 수 있게끔 돕는 것도 통합 마케팅의 목적이다. 미국의 NFL은 입장료 외에는 중계권료, 상품권, 라이선싱 등 32개 팀에 균등히 배분한다. MLB.com을 롤모델로 한 KBO.com을 만드는 것도 통합 마케팅의 일환이다. 보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작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미디어 개념의 회사로 만들어 단기적 구단 수익보단 장기적인 구단의 가치 상승세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샐러리캡과 사치세 도입과 관련해서도 찬반양론이 뜨겁다.
“샐러리캡과 사치세 도입은 동반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현재 KBO리그는 구단들 간, 선수들 사이의 연봉 불균형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된다면 동반성장을 이룰 수 없을 뿐더러 KBO리그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 10개 구단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KBO 리그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제도를 만들어 보겠다.”
―최근 경기 시간 단축을 비롯해 경기수 축소와 9이닝을 7이닝으로 줄이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리그와 야구의 발전을 위한 변화라면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다. 룰에 변화를 주는 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한다면 경기 수와 이닝 수를 줄이는 건 반대한다. 야구 고유의 룰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변화를 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경기 수가 많아 체력 문제가 노출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다. 엄청난 이동 거리를 감당하는 메이저리그도 162경기를 시행한다. 단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서울대 교수, 총장, 국무총리, 그리고 지금 총재직을 역임 중이다. 자리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 이 중 가장 어려운 자리를 꼽는다면?
“모든 자리가 다 어려웠다(웃음). 서울대 총장 할 때 교수가 1900명이라고 한다면 부총장을 제외하고 모든 교수가 총장이란 말이 있었다. 총장이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면 나머지 교수들은 왜 왼쪽으로 안 가느냐고 말한다. 모두 총장인 셈이었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세종로 언어’와 ‘여의도 언어’가 구별이 안 돼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세종로에는 ‘노우’가 없었다. 총리가 한마디 하면 모두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선 총리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여의도 언어’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KBO는 야구 현안들을 파악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임기가 3년이다. 임기 내에 모든 일들이 다 진행될 수 있는 건가.
“임기 내 모든 현안을 처리할 수는 없다. 다만 취임사 때 언급한 대로 산재해 있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 로드맵을 정하고 KBO 통합 마케팅의 기초를 다지는 게 목표다. 3년 동안 열심히 그리고 소신껏 밑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3년 후 연임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다.
“3년이면 족하다. 사실 총재, 아니 커미셔너 일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더라. 3년 동안 틀을 만들어 놓으면 다음 총재가 그 틀을 완성해가는 게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에 현재 수감 중인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와 관련된 질문도 건넸다. 정 총재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이 되는 문제”라면서 “심각한 문제 인식을 갖고 이 전 대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정운찬이 꼽은 ‘은퇴선수 드림팀’…최고 중 최고는 백인천이야! 정운찬 총재와의 인터뷰 중 ‘야구 드림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KBO 총재이기 때문에 현역 선수를 거론하긴 어려울 듯 해서 은퇴 선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들 중에 뽑아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순간 정 총재의 눈빛이 빛났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가장 흥미로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였다. ‘일요신문’ 830호에 실린 정운찬 당시 서울대 교수와 이병훈 전 해설위원의 사진. 일요신문 DB 10년 전인 ‘일요신문’ 830호를 보면 정운찬 당시 서울대 교수와의 인터뷰가 소개됐다. 그때에도 마지막 질문이 ‘내가 만약 대표팀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뽑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 총재는 다음과 같은 명단을 내놓았다. 투수엔 류현진, 포수 홍성흔, 1루수 장성호, 2루수 안경현, 3루수 김동주, 유격수 박진만, 좌익수 양준혁, 우익수 이진영, 중견수 이종욱, 그리고 지명타자 이대호였다. 당시 인터뷰에 동행했던 이병훈 전 해설위원은 “이 선수들만 데리고 있으면 126게임(2008년에는 경기 수가 126게임이었다) 중 120게임은 이기겠다”고 말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