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황병주)는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서 기소의견 송치된 서울시향 전·현직 직원 10명 가운데 9명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이들이 박현정 전 대표를 비방하려는 목적보다는 공인으로서의 자질 등에 관한 내용을 다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고 판단했다.
박현정 전 대표의 자질론 배경으로 박 전 대표의 언행이 꼽혔다. 박 전 대표가 2016년 3월 서울시향 직원 등에게 제기했던 민사소송 판결문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단 조사 결과에 포함된 2014년 8월 27일 영국 런던에서의 만찬 녹취록이 결정적이었다. 박 전 대표가 직원과의 대화에서 특정인을 지목하며 내뱉은 ‘저능아’, ‘개X’, ‘X신’, ‘깝죽거리다’, ‘년’, ‘놈’이라는 표현 등이 녹음됐다. 서울시는 이 녹취를 근거로 박 전 대표에게 제기됐던 서울시향 직원들의 인권 유린 호소 내용이 과장됐지만 대부분 사실로 보인다고 판단했었다.
다만 10명 가운데 박현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허위 사실을 호소문에 적은 곽 아무개 씨(42)만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기소됐다. 곽 씨는 박 전 대표에게 고소도 당해 무고 혐의로 기소돼 지난 3월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7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두 손을 번쩍 든 정명훈 전 감독. 연합뉴스
곽 씨는 박현정 전 대표가 2013년 9월 26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의 한 식당에서 외부협력기관과 밥을 먹다가 “과도한 음주 후 자신의 넥타이를 잡아 본인 쪽으로 당긴 뒤 손으로 주요 부위 접촉 시도했다“는 내용을 호소문에 넣었다. 2014년 12월 2일 서울시향 직원 17명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 박 전 대표의 인권 유린과 인사전횡, 고의적 업무방기 등을 A4 용지 23장에 적어 호소문을 배포했다. 17명 가운데 10명은 같은 달 23일 강제추행과 성희롱 등의 혐의로 박 전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목격자라고 주장한 서울시향 직원들의 진술은 계속 엇갈렸다. 허위 사실이었다. 결정적이었던 건 함께 식사 자리에 있던 외부협력기관 직원들의 진술이었다. 성추행이 있었다고 알려진 자리에 동석했던 외부협력기관 직원 5명은 경찰 조사에서 추행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박현정 전 대표와 이렇다 할 연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호소문 내용 가운데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곽 씨의 성추행 관련 허위 사실 유포였다. 문제는 서울시향 직원에게 곽 씨를 섭외해 강체추행과 성희롱 등으로 박현정 전 대표를 고소하라고 종용했던 정명훈 전 감독의 아내 구순열 씨(여·70)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2015년 8월 검찰에서 이첩된 고소 내용을 수사하던 도중 애초 피해자로 파악했던 고소인 10명을 피의자로 전환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서 박 전 대표를 깎아 내리려는 모의 정황이 다수 드러났던 까닭이었다. 구 씨가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됐던 점도 파악해 명예훼손 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박 전 대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시향 직원이자 정명훈 전 감독의 수행을 도맡았던 A 씨가 구순열 씨에게 보낸 “곽 씨를 섭외했습니다. 어드바이스 주신 대로 두 시간 잡고 세게 했다가 부드럽게 했다 했더니 잘 됐습니다”는 문자 메시지가 혐의점의 시작이었다. 구 씨는 A 씨의 문자 메시지 보고에 “우리가 이길 것!(We shall prevail!)”이라고 화답했다. 구 씨의 개입은 계속됐다. 2014년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A 씨 등에게 “즉시 형사 고발하지 않으면 건질 게 없는 상태가 된다” “형사 고발은 어떻게 돼 가나? 형사 고발 없이 그녀는 죽지 않아” “형사 고소가 시급하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은 구순열 씨를 여러 차례 불렀지만 구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전화, 문자 메시지, 전자우편, 출석요구서 등 4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 씨는 2015년 2월 프랑스로 출국했다고 알려졌다. 그 해 4월 출국 정지 상태가 됐다. 경찰은 결국 한국으로 오지 않은 구 씨를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구 씨는 이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아직까지 없었다고 알려졌다. 검찰은 구 씨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조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지 않은 건은 따로 확인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 수사 자료에는 구 씨가 단순 종용을 넘어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던 내용도 여럿 나왔다.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2014년 10월 18일 구 씨는 “시장은 이미 충분히 알고 개입돼 있다. 정명훈 전 감독이 시장에게 기한을 12월까지 줬다(시장 is fully aware and is involved plenty! Maestro gave the mayor Dec. deadline)”고 A 씨에게 전했다. 정 전 감독이 정한 기한이 다가올 때쯤 구 씨는 A 씨에게 “시장 부인한테서 ‘너무 미안하다. 시장한테 전했다’는 연락이 왔으니 처리하겠지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유럽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잘 모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시장님께 말씀 드리고 전달해 드렸습니다. 몸 건강히 돌아오십시오. 강난희 올림”이라고 왔던 박원순 서울시장 부인의 문자 메시지를 축약한 내용이었다.
강난희 씨와 구순열 씨의 문자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장님께서 인권을 중요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권유린을 하는 사람을 조속히 처리해 주실 거라며 다들 의심 없어 합니다. 또 오히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도 예술인들의 창작영역을 적극 넓혀주느라 온갖 힘을 쏟는 프랑스와 같은 문화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역전될 수 있기를 원하고요”라는 구 씨의 문자 메시지에 강 씨는 “감사 드립니다. 시장님께 어저께 밤늦게 직접 보여드리고 말씀 또 드렸습니다. 저도 시장님께서 예술인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후원하시는 시장님 되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마 잘 해결될 거 같습니다. 몸조심 하십시오. 강난희 올림”라고 화답했다. 둘은 정명훈 전 감독이 박원순 시장을 모처로 초대하는 과정에서 가까워진 사이였다고 전해졌다.
정명훈 전 감독을 향한 따가운 눈총도 그치지 않고 있다. 스스로 나서지 않고 아내를 사건의 중심으로 뒀다는 점과 민원 제기의 부적절한 절차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의 아내까지 개입되는 등 복잡했던 사건은 이제 법원의 판단만을 남겨 두고 있다. 정 전 감독은 서울시향 호소문이 발표됐던 날까지도 자신의 아내를 통해 강난희 씨 번호로 박 시장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시장님. 여러 가지 일들로 계속 바쁘실 줄 압니다. 다름이 아니라 시향 대표의 문제 해결이 아직 안 되고 있다고 합니다. 출국 전 시장님께 이미 말씀 드렸듯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저의 사임 상태 유지의 뜻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정명훈 드림.”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