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당신들의 천국>이 이처럼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의 재미와 함께 인간사의 진면목과 권력의 속성, 조직의 생리 등 세상사의 진실을 교훈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한 사람인 황장노가 말한 ‘자유를 쟁취하다가 익힌 몹쓸 버릇’ 같은 것도 그런 대사의 하나다.
“자유라는 거 누가 가만 앉아 있어도 바쳐주는 건 아닌 터에 어차피 그건 제 힘으로 빼앗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빼앗아 가지려니 싸움질을 해야하고 싸움을 하다보니 그 사이에 자연 의심과 원망과 미움을 익히게 되지. 오로지 자유를 행할 줄은 알았어도 거기서 익힌 몹쓸 버릇들, 일테면 남을 덮어놓고 의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심성에 대해선 미처 눈을 뜨지 못했던 게야….”
얼마전 ‘비주류의 냉소주의’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접하면서 문득 황장노의 ‘자유를 쟁취하다 익힌 버릇’을 떠올렸다. 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자신의 냉소주의적 심성에 대해 토로했다.
“나는 자조적·냉소적 표현을 자주 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그간 비주류의 길을 걸으면서 길러진 습관이다. 금방 고쳐지진 않겠지만 한국의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한국의 대표선수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처신을 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노 대통령의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들이 자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에서부터 “성질을 한 번 보여주고 싶었는데”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말은 가슴속에 있는 느낌을 여과없이 쏟아내듯 거침이 없었다.
그동안 참모들에 의해 치밀하게 여과되고 정제(精製)된 대통령의 품위있는 말씀에 익숙했던 국민들에겐 낯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품위나 격식을 고려하지 않는 대통령의 이 같은 표현을 빗대어 ‘오럴 해저드’라는 신조어까지 나돌고 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의사표현 방식은 평소 격식을 싫어하는 성품에다 스스로 토로했듯 오랫동안 비주류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굳어진 습관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자신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앞으로는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처신을 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 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국정은 아직도 비주류 쪽에 기울어지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화물연대 파업사태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혼선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말로는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선수가 되겠다면서도 막상 사태가 불거지면 어쩔 수 없이 비주류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직도 비주류 시절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비주류시절의 시각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품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국정이 왜곡되거나 표류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부터 비주류가 아니라 당당한 주류의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1백일, 이제부터는 수습(修習)기간을 넘긴 대통령의 자신있는 국가운영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