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뇌물 또는 갑질 사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다른 재벌가와 달리 구 회장은 신중한 처신과 소탈한 면모로 재계 안팎의 존경을 받았다. 구 회장이 동생 구본준 LG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 대행을 맡기면서 “너도 곧 경영할 거면 인맥 좀 만들어 봐. 장사하려면 우선 사람을 많이 사귀고, 들어야 해”라고 조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생전 야구와 당구 등 구기 종목을 좋아했던 구 회장은 임원들과 내기를 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려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 = LG
구 회장의 공식 후계자는 장남 구광모 LG전자 ID(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사업부장(상무)이다. 지난 17일 LG는 구 상무를 지주사인 ㈜LG 사내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다음달 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가 확정되면 LG의 경영 승계 구도도 명확히 결론이 날 예정이다.
현재 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지주사 ㈜LG의 등기이사가 아니다. 재계에선 구 상무가 다음 달 주주총회를 통해 LG전자에서 ㈜LG로 자리를 옮기면 구 부회장 역시 어떤 형태로든 거취를 결정지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LG는 창립 이래 ‘장자 승계’란 경영 원칙을 고수했다. 장자가 기업을 승계하면 남은 형제는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전통이다.
구인회 LG 창업주 때부터 2대인 구자경 LG 명예회장까지 장자 승계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됐다. 구인회 창업주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LG화재를 독립시켜 현재의 LIG그룹을 만들었다. LS그룹 역시 계열분리를 통해 LG에서 독립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길 당시에도 동생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 같은 이유로 구본준 부회장 역시 가급적 이른 시간 내에 LG에서 독립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후계자인 구 상무가 1978년생으로 ‘4세 경영’을 시작하기엔 다소 어린 나이란 점은 변수로 꼽힌다. 재계 일각에선 구 상무가 경영 수업을 받는 동안 구본준 부회장이 좀 더 ‘대행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구본준 부회장이 급작스레 경영 일선에서 퇴진할 경우 삼성그룹처럼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룹 후계자와 작은아버지가 공존하는 형태라 향후 기업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점은 LG로서 고민스런 부분이다. 구 회장의 4형제 가운데 둘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넷째 동생인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은 일찌감치 LG에서 독립했다.
LG트윈타워 전경. 박정훈 기자
당분간 LG는 그룹 내 6명의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4세 경영’의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해진다. 6명의 부회장 가운데 오너 일가와 친족 관계이거나 의결권 있는 주식을 가진 인사는 단 1명도 없다. 다만 하현회 LG 부회장은 구 상무의 경영 수업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임원으로 향후 그룹 내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 상무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구 회장의 양자로 2004년 입적했는데 당시 구 회장의 경영 수업을 도왔던 이가 하 부회장으로 전해진다. 구 상무의 친부는 구 회장의 둘째 동생 구본능 회장이다.
구 상무가 본격적인 LG 4세 시대를 열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는 ㈜LG의 지분 확보다. 구 상무는 ㈜LG 지분 6.24%를 보유해 기관(국민연금)을 제외한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11.28%를 가진 구 회장, 2대 주주는 지분 7.72%를 가진 구 부회장이다. 구 상무가 ㈜LG 최대주주가 되려면 구 회장의 지분을 직접 상속받거나 구 부회장으로부터 일부 지분을 양도받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구광모 LG전자 상무. 사진 = LG
때문에 구 부회장을 포함한 LG 일가가 십시일반 구 상무를 지원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미 ㈜LG는 LG 일가가 40%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어 외부 충격에 의해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 구 상무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은 ㈜LG 지분 3.45%를 갖고 있고, 어머니이자 구 회장 부인인 김영식 여사도 지분 4.2%를 갖고 있다. 작은아버지 구본식 부회장도 4.48%, LG 계열인 연암학원도 2.13%로 갖고 있어 우회 지분 비중이 높다. 때문에 구 상무가 구 회장 지분을 일부만 흡수하고 남은 지분은 팔아 상속세를 마련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