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천부적인 재능이요? 그런 거 아니에요. 천부적 재능은 때론 독이에요.” 천부적인 재능을 믿고 안이해져서 흥미를 잃은 천재들을 많이 봤단다. 생각보다는 몸이 유연하지 않아 유연한 몸을 만들기 위해 연습을 하루도 쉬지 않는다는 강예나씨가 말한다.
“유니버셜 발레단에서도, ABT에서도 언제나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연습했어요.” 그 여자는 갈고 닦기를 즐기는 진짜 무용인이었다. 유니버셜 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버리고 뉴욕으로 날아가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결단했을 때는 왜 세계정상에 우뚝 서고자 하는 꿈이 없었겠는가? 사실 그 꿈으로 지치지 않고 노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뉴욕으로 날아간 지 2년, 피나는 노력 결과 겨우 자기 이름을 걸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예기치 않은 다리 부상,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무용수로서는 절정이랄 수 있는 꽃 같은 20대 중반, 그 치명타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 속수무책의 상황은 생각보다 길었다. 2년, 절망적이었다.
그때 그 여자가 꼭 붙잡은 것은 신앙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고. 시련은 강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음 덕택이었을까? 무용수로서 활동할 수 없었던 2년 동안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강예나가 무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그러니 무용수로서의 죽음의 2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2년 동안 그녀는 자기 몸에 대해 공부했다. 어떤 음식이 맞고 어떤 음식이 맞지 않는지, 어떤 운동이 맞고 어떤 운동이 맞지 않는지. 음식은 다 좋은 것이 아니었고 운동도 다 맞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맞는 음식과 맞는 운동을 찾았고, 자신의 몸에 관한 한 의사가 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다시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으로 일어난 그녀, 요즘 그녀는 자기에게 맞는 요가로 아침을 연다. 20분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풀고 나서 근력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땀을 흘려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육체를 고통스럽게 해야 정신의 균형이 생긴다는 그녀. 나는 그녀에게서 단순하고도 깊은 아름다움을 보았다.
이제는 강예나라는 한 개인을 드러내는 무용이 아니라 거스름이 없는 무용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경지를 본 것 같다.
“스토리 발레를 하면 무용이 안 보이고 스토리가 깊이 박히고, 스토리가 없는 발레라면 음악이 각인되는 그런 무용을 하고 싶습니다.” 물을 만나면 물이 되고 바람을 만나면 바람이 되고 불을 만나면 불꽃이 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특별한 자아만이 있을 때는 ‘나’만 남는데 자아가 사라지니 세계가 되는 경지 아닌가. 자의식이나 스타의식이 있으면 할 수 없는 얘기였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자였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