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 ||
우리나라의 대표적 통신 회사인 KT가 단일기업의 1회 감원규모로는 최대인 5천5백여 명에 대한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은 수익이 저조한 점포 1백20여 개를 폐쇄할 예정이다. 신한지주에 인수된 조흥은행도 본인의 희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규모 구조조정을 시행할 전망이다. 분식회계와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있는 SK그룹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중이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기업수익성이 악화되자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앞장서서 사람 덜어내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가운데 나온 대통령 재신임 선언은 경제를 한치 앞을 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실업자들은 무슨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가? 더구나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을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감원 바람은 일시적으로 기업들의 경영 호전을 가져올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실업자를 양산하고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경제의 기본적인 목표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풍요롭게 살게 하는 것이다. 기업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기업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감원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는 경제 발전이 아니라 사회 파괴의 수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발전한다. 그러나 감원은 기업이 생존상 어쩔 수 없이 동원하는 최후 수단이다. 따라서 경영이 어려우면 임금을 깎는 한이 있어도 감원은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
최근에 불고 있는 감원 바람은 바다에서 배가 고장났다고 사람을 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때일수록 기업들은 근로자들과 하나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는 공동운명체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혼돈의 연속이다. 배는 침몰 위기를 맞았는데 선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경제에 대한 낙관론으로 일관하며 이렇다 할 만한 경제회생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벌개혁과 노동정책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우왕좌왕이다. 경제침체는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 정책이 혼선을 빚자 정부의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하고 불신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경제가 더욱 기력을 상실하고 급기야 기업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무자비한 무기를 꺼냈다.
경제가 침몰 위기를 맞은 상태에서 정부정책이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 우선 재신임 정국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효율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급하다. 경제부총리는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순수 경제논리에 따라 정책을 추진할 것을 명확히 하고 각 경제부처는 경제부총리의 총괄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경제팀의 인적 구성을 바꾸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과감하게 펴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획기적으로 조성하여 기업들이 의욕을 갖고 소매를 걷어 올리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기업들은 정치 불안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무더기 감원정책을 중단하고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여 근로자들과 함께 일어서는 의연한 전략을 펴야 한다.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