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일 남 | ||
평생을 두고 줄창 이런 질문을 받으며 사는 것이 사람의 일인가 한다. 달리 말하면 선택의 연속이 즉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리면 어린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그런 요구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나 결단은 쉽지 않다. 결과가 지극히 사소한 경우라면 모를까, 어떤 빌미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예감하면 더욱 난감하다. ‘선택의 당위가 나에게는 언제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했던, 앙드레 지드의 술회대로 막막할 수 있다.
결단의 요구는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 대사와도 흔히 연결된다. 이 땅에서는 정치적으로 특히 심하다. 애초에 좌냐 우냐로 시작하여, 이제는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중간은 여간해서 허용되지 않는다. 양쪽의 장점 단점을 잘 수렴하여 명실 공히 근사한 독립적 자유주의자를 표방하면 그만인데, 그 노릇도 실상 어렵다. 중간을 ‘중용’(中庸)으로 업그레이드시키기가 지난한 탓이다. ‘한편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너무 지나치거나 미치지 않는 예사로운 경지’를 어떻게 감히 마음먹는담. 속세를 떠난 사색인의 철학으로나 가능하다.
어떻든 이 자리에서는 국민들의 대사회적 선택에 더 비중을 두려니와,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에 들고 나온 재신임 문제는 이미 선택받은 대통령이 다시 다짐을 받고자 가다 못 가고 되돌아 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국민에게 자신의 거취를 담보 삼아 직접 대답을 요구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도 의당 어리둥절할 밖에 없었다.
놀랍고 당황하기는 야당이 더했던 것 같다. 할 테면 빨리 하라고 서둘다가 재신임 국민투표에 앞서 측근 비리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고 공세의 방향을 바꿨다. 그쪽으로 입장을 튼 데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 대정당의 금도를 의심케 한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재신임 우세 때문이라는 항설이 오락가락 떠돌 뿐이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이 지지율 만회를 위한 승부수라든가 정권을 건 도박이라는 소리가 많다. 어찌 그런 생각이 없겠는가. 그 역시 정치가다. 표면상 이유야 아무튼지, 정치적 사중구생(死中求生)의 결단 의지도 있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이런저런 구설과 찬반 의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요새는 재신임안이 차차 사그라지는 분위기다. ‘모든 정당이 다 국민투표를 반대하는데, 나 혼자서만 강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 정치적으로 타결짓겠다’고 노 대통령도 말했다.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국민투표 일정과 방법을 설명하고 설득하겠다는 뜻이지, 아예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대변인의 부연 설명이 뒤따랐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느낌이다.
어쨌거나 이쯤에서 거둬들이는 게 낫지 싶다. 돌아가는 민심에 비추어 온당한 조치 아니겠는가. 재신임이 결코 달갑지는 않지만 부결되었을 때의 혼란이 두려워 찬표를 던지겠다는, 고민에 찬 선택에 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아니 당연하다.
대통령직까지 버릴 각오로 운을 뗀 말이다. 없던 일로 치자니 열적기도 할 게다. 타이밍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경제가 영 살아나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은 민심에 대면 약과다. 이번 일로 잃은 것 못지 않게 얻은 것 또한 많으리라는 계산이 백면서생의 주먹구구로도 가능한 마당에 하물며, 망설일 것 없다.
무엇에 ‘연연하지 않겠다’거나 ‘백의종군’ 따위 말마디는 지겹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언명은 지금껏 보인 당찬 행적으로 미루어 괜한 수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서운가. 무엇이 선택을 가로막는가. 청와대도 개비하고 정치개혁에도 한층 공을 들여, 답답하고 폭폭한 국민들의 가슴에 감동의 불을 활활 지펴주기 바란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