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해외에서 자란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쌀 맛을 찾아 이 땅에 온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마지막 간식거리로 남겨주신 그 올게쌀의 맛! 그 맛의 기억을 단초로 자신을 버려야 했던 불쌍한 어머니를 찾아가는 남자! 허영만이 말한다.
“유년의 밥상에 올랐던 소박한 찬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떠올리는 것은 그리움에 다름 아니다. 맛은 추억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훌륭한 맛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에 인이 박혀 있는 것이다. 무조건 마음을 놓아도 되는 그 편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먹던 맛은 맛이 아니라 삶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 맛의 기억은 험하고 힘든 인생을 지켜주는 불빛이 될 수 있다.
음식은 정으로 먹는 것이고, 정맛의 기억은 환자를 치유하기까지 한다. <식객>보다 먼저 나온 일본의 음식 만화 <맛의 달인>에는 그때 그 추억의 맛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지로의 동료 유우코의 할머니는 치매 초기인데, 늘 옛날에 먹은 조현의 닭고기 타령을 한다. 50년이나 닭고기 요리를 하는 그때 그 집을 다시 찾아 그때 그 식의 그 상을 받은 할머니의 얼굴엔 평화가 번졌다. 그런데 일단 맛을 본 할머니의 표정은 순식간에 불안하게 구겨진다. 너무 냄새가 난다고, 이렇게 맛없는 고기가 아니었다고.
모두들 할머니가 늙어 입맛이 둔해진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 지로는 달랐다. 그는 마당에다 닭을 놔 기르는 시골농가를 찾는다.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지렁이와 벌레를 잡아먹고 자란 닭과, 사료배급을 줄이기 위해 캄캄한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육된 닭은 같은 닭일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 그 차이를 할머니의 미각이 알고 있는 거라고.
지로의 판단이 옳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기른 닭요리를 드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흐뭇하다. 바로 이 맛이라고. 미각 회복이 계기가 되어 병까지 나은 할머니는 마당 한 켠에 닭을 기르고 자연스레 달걀을 얻는다. 할머니의 삶도 회복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어머니의 밥상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정성이 배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밥상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을 받고,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정을 느낀다. 가장 깊은 맛은 바로 사랑의 맛이고, 정의 맛이다. 그래서 매일 호텔에서 최상의 음식을 먹는 사람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사랑의 맛, 깊고 쌉싸름한 정의 맛을 찾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