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러시아워가 따로 없이 하루종일 막히는 것이 서울의 교통사정이긴 하다. 그러나 요즘엔 ‘반드시’라고 할 만큼 매주 토요일 오후 광화문네거리와 종묘공원에서 각종 집회가 열리는 바람에 종로일대는 삽시간에 주차장으로 변한다. 따라서 토요일 오후에 종로나 광화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차라리 걷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이런 건 누가 발표를 해서가 아니라 오도 가도 못하는 곤욕을 치른 끝에 어렵사리 터득한 서울살이의 지혜다.
자동차 대신 걸어간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자칫 시위현장에 휩쓸리면 화염병 파편이나 경찰의 방패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를 훼손당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정말 운이 나쁘면 시위대가 새총으로 쏘아대는 볼트나 쇠붙이에 실명(失明)할 수도 있다. 가장 안전한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은 되도록이면 시위현장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고 시위현장 사정이 정 궁금하면 저녁시간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된다. 얼마 전엔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볼트나 나사 등 쇠붙이를 새총으로 쏘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며칠 전엔 서울 상도동 재개발현장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던 용역업체 직원의 허벅지와 종아리에서 지름 1.3cm가량의 구슬과 금속 파편들이 나왔다. 경찰은 시위대가 사제총(私製銃)을 사용해 쇠붙이를 발사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난 각종 단체들이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과 주장을 내세우며 극한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이제는 나라 전체가 무정부상태와 같은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법과 질서가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고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는 눈치 살피기에 급급하다. 최소한의 법질서마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한국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은 ‘과연 이 나라에 정부가 있는가’라는 볼멘소리를 터뜨린다.
집회의 자유도 좋고 시위의 자유도 좋다. 이러한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러나 자유란 상호간에 남의 자유, 또는 다른 자유와 충돌할 요소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참다운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데 있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남의 자유를 아랑곳하지 않는 무제한의 자유는 자유의 기반마저 무너뜨린다.
참여정부 9개월 만에 이처럼 대통령의 권위가 흔들리고 공권력이 무력화된 것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국정의 벼리를 장악하지 못한 데다 갈등을 조정하고 여과해야 할 정치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내년 총선에만 매달려 법과 질서가 바닥없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방치한다면 결국 나라의 기반까지 붕괴되는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요즘 정치권의 파워게임은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갑판’ 위에서의 의자 싸움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언론인